효는 백행의 근본이라 하였다.
그래서 모든 행실은 부모에게 어떻게 효도하느냐를 보면 안다 하였다.
“그 사람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부모에게 불효를 한다.”
이 말 한 마디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 특히 선거판에서는 치명적이다. 유망한 당선권에 들어 있는 사람도 불효자라는 소문에는 이겨낼 방법이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한다. 효도라고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변해도 너무 변해가고 있다.
요즘은 부모가 자식의 밥이 되어가고 있다.
‘밥’이란 가장 만만한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이것은 옛날 노예제도가 있을 때에 노예에게나 사용하던 말이다. 조선시대에 종으로 부리던 사람들에게나 쓰던 말이다. 현대에는 조직폭력배들 사이에서나 있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 것을 부모에 적응을 시키니 기가 막힐 일이다.
단 한 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니 소중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귀한 게 아니라 내 자녀가 귀한 것이다. 어찌 보면 내 자녀만 귀한 것이다. 그렇게 키우다 보니 효도라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 것이다. 자녀의 비위를 맞추다 보니 효도가 뒤바꾸어 있다.
“길을 건널 때는 신호등을 잘 보고 녹색불이 켜져 있을 때에 건너야 돼요. 알았죠?”
부모가 최대한 부드럽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은 이렇다
“응! 알았어, 엄마.”
엄마는 경어를 쓰고 아이는 반말을 하고 있다. 그 부모는 자녀에게 경어를 써서 공손하게 말했다고 자녀교육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녀의 대답은 염두에 없다. 그래서 아무런 시정이나 주의도 주지 않고 즐거운 표정으로 횡단보도를 잘 건너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람은 부모와 자식이다.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 사이다. 그래서 허물이 없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상호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더군다나 밥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갈수록 부모들은 자식의 밥이 되어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효도를 가르쳐야 한다. 알아야 효도를 한다. 효도도 배워야 안다.
부모의 말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도 소중하게 받아들인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여기고 존경할 줄 안다.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효도를 가르쳐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이다. 이미 배워놓은 효도이니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다. 자녀들도 어렵지 않게 효도를 하게 하려면 효도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세월이 흐른 뒤에 자녀들의 밥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