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정성껏 짜주신 들기름 한 방울이 음식의 맛을 좌우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같은 들깨라도 왜 어떤 것은 더 고소하고 몸에 좋을까? 최근 농촌진흥청이 밝혀낸 연구 결과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들깨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유전자였다.

연구진(Yoo et al., 2025)이 334개의 들깨 자원을 분석한 결과는 놀라웠다. 오메가-3 함량이 높은 들깨는 지방산 불포화효소3(FAD3) 유전자의 182bp 위치에서 'G' 염기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DNA 서열 속 단 하나의 글자가 들깨의 운명을 바꾸는 셈이다.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들깨 지방산의 90%가 불포화지방산이고, 그중 55%가 오메가-3인 알파-리놀렌산이기 때문이다. 알파-리놀렌산은 EPA와 DHA의 전구물질로, 인체에서 합성되지 않아 반드시 음식으로 섭취해야 하는 필수지방산이다. 항염증과 심혈관 건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이 성분의 함량을 유전자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혁신적이다.

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
들깨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뜨겁다. 세계 들기름 시장은 2021년 1조 2천억 원에서 2031년 3조 3천억 원으로 10년간 3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의 들기름 수출액도 2021년 156만 달러에서 2024년 211만 달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이 최대 수출국이다. 이번 연구가 의미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발굴된 고함량 오메가-3 들깨 5종 중 4종이 우리나라 원산 자원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한 정밀 육종이 가능해지면서, K-들깨가 세계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이번 연구는 농업이 경험에서 과학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수년간 재배해봐야 품질을 알 수 있었다면, 이제는 유전자 분석으로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연구진이 개발한 분자표지는 들깨 육종 기간을 대폭 단축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이 기술은 맞춤형 농업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건강기능식품용 고함량 오메가-3 들깨, 요리용 고급 들기름을 위한 특화 품종 등 목적에 따른 세분화된 육종이 가능해진다. 소비자 니즈에 정확히 부응하는 농산물 생산이 현실화되는 셈이다.

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는 이미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들깨 자원을 연구 목적으로 분양하고 있다. 하나의 유전자 연구가 전체 산업 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발견의 파급효과는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할머니 세대의 경험과 직감이 이제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좋은 들깨를 알아보는 눈이 사실은 유전자를 읽는 능력이었던 셈이다. 앞으로 우리 식탁에 오르는 들기름 한 방울에는 단순한 맛을 넘어선 과학적 정밀함이 담길 것이다. 작은 유전자 하나가 만들어낸 이 변화는 한국 농업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가 될 것이다.
| 참고문헌
Yoo, E., Kim, E. G., Lee, J. E., Lee, S., Lee, D., & Lee, G. A. (2025). Genetic variations in FAD3 and its influence on agronomic traits and fatty acid composition in perilla germplasm. Plant Science, 355, 112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