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향토문화 유산 제6호 시사재
전주의 동쪽, 도당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산줄기 끝에 여성의 교육의 산실인 “유일여자고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설립 구분이 국립이나 공립, 사립이 아닌 ‘종립’이다. 이는 전주 류씨 종가에서 세운 학교이기 때문이다.
학교 뒤에는 큰 무덤이 있는데 이 무덤이 다섯 아들과 사위를 과거에 급제시킨 자녀 교육의 화신이라 부를 만한 전주 류씨 완산백 류습과 그의 부인 삼한국대부인 전주 최씨의 무덤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이들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시사재(時思齋)가 있다.
전주시 덕진구 안골 3길 23-4(인후동 1가 549-4번지)에 위치한 시사재(時思齋)는 조선 영조 11년인 1735년 14대손 류복영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일가들과 힘을 모아 시사재를 창건하였다. 그 후 1875년에 중건하였다.
완산백 류습과 삼한대부인 전주 최씨는 다섯 명의 아들을 모두 과거에 급제하게 하였으며 사위까지 급제를 하게 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고려 우왕 때에 류습에게는 완산백(完山伯)으로 봉하고 류습의 부인 최씨에게는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나라에서는 식읍(食邑)으로 도당산의 일부를 하사하였다. 그곳이 지금의 시사재와 묘소 및 유일여고가 있는 자리다.

특히 삼한국대부인 최씨는 전주 류씨(全州柳氏)의 시조인 유습(柳濕)을 도와 5남 1녀의 자녀들을 잘 길러 장남인 극강(克剛)은 정 3품 벼슬에 해당하는 판사(判事)를 지냈고, 차남 극서(克恕)는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의 정3품 벼슬인 직제학(直提學)을 지냈으며, 3남 극수(克修)는 6조의 으뜸 벼슬로써 정승 다음이라는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냈다. 4남 극제(克濟)는 성균관의 최고직으로써 유학에 관한 일을 맡아 하던 정3품 벼슬인 대사성(大司成)을 지냈고, 5남 극거(克渠)는 6조 중 오늘날의 장관급인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지냈다. 그리고 사위 청송 심효생(沈孝牲)은 홍문관 예문관에 소속된 정2품의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자기 아들뿐만 아니라 사위까지 모두 과거에 급제하게 하였던 삼한국대부인 최씨는 맹자나 한석봉의 어머니 못지 않는 자녀교육의 모델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을 본받고자 전주 류씨 종가에서 여성교육의 산실이 될 유일여자고등학교를 세워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주 류씨 시사재(時思齋)는 전주시 향토문화 유산 제6호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