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시로의 초대)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출 수 없었기 때문에, 에밀리 디킨슨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Emily Dickinson (1830-1886)

작성일 : 2021-12-23 09:07 수정일 : 2021-12-23 11:01 작성자 : 정석권 기자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Emily Dickinson (1830-1886)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He kindly stopped for me―

The Carriage held but just Ourselves―

And Immortality.

We slowly drove―He knew no haste

And I had put away

My labor and my leisure too,

For His Civility―

We passed the School, where Children strove

At Recess―in the Ring―

We passed the Fields of Gazing Grain―

We passed the Setting Sun―

Or rather―He passed Us―

The Dews drew quivering and chill―

For only Gossamer, my gown―

My Tippet―only Tulle―

We paused before a House that seemed

A Swelling of the Ground―

The Roof was scarcely visible―

The Cornice―in the Ground―

Since then―'tis Centuries―and yet

Feels shorter than the Day

I first surmised the Horses' heads

Were toward Eternity―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출 수 없었기 때문에

에밀리 디킨슨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출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친절하게도 나를 위해 멈춰 주었지.

마차에 타고 있는 건 우리와

불멸뿐이었지.

우리는 천천히 갔지. 그는 서두를 게 없었나 봐.

나는 일하던 것도, 쉬는 것도

제쳐 놓을 수밖에 없었어.

그의 정중함에 보답하려고.

우리는 아이들이 휴식시간에

원을 이루어 놀고 있는 학교를 지났지.

우리는 곡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들녘을 지났어.

우리는 지는 해를 지나쳤지.

아니, 해가 우리를 지나쳤다고나 할까.

이슬이 떨리게 하며 싸늘하게 내려앉았어.

내가 걸친 옷이라곤 얇은 천에

망사로 된 어깨걸이뿐.

우리는 어느 집 앞에 잠시 멈췄어.

땅이 부풀어 오른 것 같았지

지붕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처마 돌림띠는 땅속에 있었어.

그러고는 몇 세기가 지났지. 그런데,

처음 말 머리가 영원을

향하고 있다고 내가 추측했던

그날 하루보다 짧게 느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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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에밀리 디킨슨이 자주 다루었던 주제 중의 하나인 죽음에 관한 시입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다른 주제와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해서도 상투적인 틀을 거부하고 새롭고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죽음은 보통 생각하는 것과 같은 무섭거나, 슬프거나, 한스러운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데이트를 초대하는 예의 바른 사람처럼 서두르지 않으면서 공손하고 정중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 시의 맨 처음은 에밀리 특유의 서사 기법으로 너무도 당연한 말을 격언처럼 새겨서 말합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죽음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죽으려고 해도, 또는 안 죽으려고 해도 죽음은 죽음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때에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데 반해서 이 시의 화자는 아주 친절한 연인, 또는 여행 안내인과 같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죽음이라는 안내인과 함께 타고 있는 손님은 “불멸”입니다. 아마 우리가 죽게 되면 영원불멸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이 시에서 죽은 다음의 세계는 마차를 타고 천천히 달리며 풍경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그 주위의 풍경은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 운동장, 곡식들이 익어가는 들판, 서산에 지는 해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아이들은 인생의 처음이고, 곡식이 익는 것은 사계절의 마무리이고, 해가 지는 것은 하루의 끝이니 시간상으로는 큰 범위에서 작은 범위로 작아집니다. 공간상으로는 초등학교 운동장, 벌판, 일몰 풍경의 식으로 점점 커지는 것 같고요. 시공의 축소와 확장이 중첩되면서, 마차는 죽음 후의 세계를 달립니다.

  그 세계는 죽음 이전의 세계를 추억하거나 반복하는 듯 보이지만, 온기와 열정이 없는 싸늘한 뒤풀이 같이 그려집니다. 죽음 후의 몇 세기는 마치 죽은 날 하루처럼 스쳐 지나가며, 마차가 향하는 곳도 영원이라는 확신보다는 그러리라고 추측하는 식으로 그려집니다.

  전반적으로 이 시의 분위기는 죽음 후의 세계보다는 현세의 삶의 따스함과 애절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원하리라고 추측되는 죽음 후의 세계는 싸늘하지만, 영원불멸이 아니므로 현세의 삶이 더욱 소중하고 의미 있다고나 할까요. 이 시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리면서 역설적으로 죽음 이전의 세계의 아름다움과 애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우리나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약간의 신화적인 분위기와 냉소적/객관적인 자세로 삶과 죽음을 그려냈다면, 천상병은 동화적인 자세로 순수/순진하게 이 세상에서 삶을 사는 것과 떠나는 것을 노래했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지나온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 김분임

겨울나무 53.0 x 40.9 Watercolor on paper

 
정석권 기자 skcheong@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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