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시민들의 휴양지요 체련공원으로 사랑받고 있는 건지산은 조선 왕조의 뿌리이며 발원지를 품고 있는 산이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는 조경단(肇慶壇)이 있기 때문이다.
조경단은 전주 이 씨의 시조인 이한의 묘다.
태조 이성계는 이한의 21대손이다.
이성계는 조선왕조를 세운 뒤 건지산에 있는 이 묘를 잘 관리하도록 했으며 그 후 역대 왕들도 정성을 다하여 관리를 했다.
특히 고종은 광무 3년인 1899년에 이곳에 단을 쌓고 비를 세웠으며 당상관을 배치하여 매년 한 차례씩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지금 비석에 새겨진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이라는 글씨와 비문은 고종 황제가 직접 쓴 어필이다.
조경단은 경내 1만여 평의 주변을 돌담으로 쌓고 동서남북에 문을 두었다. 조경단 남쪽에는 고종이 세운 비석이 비각에 안치되어 있다. 비석은 거북등 위에 세워졌으며 너비 1.8m, 두께 0.3m, 높이 약 2m로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비석 앞면에 새겨진 ‘대한조경단’이라는 글씨와 비문은 고종의 어필이다. 비각은 한 변이 7.2m인 정사각형 3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조경단 경내는 홍살문, 조경단 비각, 조경단 제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변은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있다.
조경단은 경기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호)과 조경묘와 더불어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원지임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전주 이 씨는 통일신라 말기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던 ‘이한’을 시조로 18대인 목조까지 전주에 기거하였다. 목조는 지금의 이목대인 발산에서 살았다고 한다.
고려 때 무신정변을 주도한 전주 이 씨였던 이의방이 피살되자 동생 이 린이 고향인 전주로 낙향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이 린의 손자인 이안사의 현손, 즉 고손이다.
현재 전북에서 전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은 부안이다.
조경단이 세워지게 된 유래는 영조 4년인 1771년에 유생들이 조선왕조 시조인 사공 이한과 동비인 경주 김 씨의 위패를 봉안하는 시조묘의 건립을 건의했다.
이로 인하여 영조 때에 조경묘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한 때는 동학혁명군에 의하여 전주가 점령되자 조경묘에 있던 위패가 경기전에 있던 태조 영정과 함께 주변의 위봉산성으로 피난을 하는 일도 있었다.
전주가 조선 왕실의 발원지임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건지산에는 조경단을 조성하고, 목조가 살았던 이목대 발산에는 목조의 유허비를 세웠으며, 오목대에는 태조의 주필유지비를 세운 것이다.
1899년 3월에 궁내부특진관인 ‘조경단봉심재신’으로 이재곤이 전주에 와서 건지산 묘소 검분이 실시되었다. 동서 3,360척, 남북 3,520척의 경내를 정리하고 경내의 토지나 단의 좌우 계곡에 인접된 전답은 본단 수봉궁에 속하게 하였다. 그리고 고종 어필의 전제와 찬문으로 대한조경단비가 건립되었다.
조경단은 오늘도 돌담으로 둘러싸인 채 돌담 둘레를 산책하는 사람들을 경비병 삼아 전주 이 씨의 시조묘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