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리보 공덕비와 영벽정을 찾아서

서민을 위한 부자들의 큰 봉사

작성일 : 2022-01-16 20:52 수정일 : 2022-01-17 08:44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사선대 앞산 산마루에 높이 솟아 있는 정자에 비하여 산의 가장 낮은 곳에 자리 잡아 사람들의 눈길도 닿지 않는 한쪽 구석에 서 있는 이십리보 공덕비는 여느 비와 다름없는 지극히 평범한 비다. 그러나 비록 볼품없는 작은 비라 하더라도 거기 담겨 있는 내용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큰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주에서 남원을 향하여 달리는 춘향로를 달려가다가 관촌 사선대로 들어서는 입구의 산 아래 한쪽에 작은 정자가 있고 그 정자 옆에 공덕비가 하나 서 있다.

 

이 공덕비가 부자로서 가난했던 향촌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사재를 털어 오원강을 막아 보를 만들어 가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준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주민과 관청이 함께 세워준 이십리보 공덕비.

 

이십리보는 세칭 형제보라 칭한다.

이 보는 조선시대 중종 5년 갑인 년인 1508년에 조선시대 6조의 차석 당상관(堂上官)인 종 2품 벼슬이며 정 2품 판서를 보좌하는 차관 격이었던 전주 최씨 참판 최순(崔珣)공과 조선시대 집현전, 홍문관, 승문원, 교서관 등의 정 5품의 관직이었던 교리를 지낸 최전(崔琠) 공 두 형제가 임실군 신평면 대리 사람들의 농사를 돕기 위하여 만들어준 보다.

 

두 분의 선친이신 우계(禹溪) 최반(崔潘) 공은 조선시대의 간쟁(諫諍), 논박(論駁)을 관장하던 관서인 사간원과 왕에 대한 간쟁을 맡은 사간원의 장관으로 정 3품 당상관 직인 대사간을 지내고 영광 군수, 김제 군수를 역임한 후 은퇴하여 향리로 와서 향민의 생활상을 살피다가 명승지 사선대와 오원강의 수려한 풍광을 낀 넓고 기름진 들녘에 풍부한 물산과 후한 인심으로 서민들이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관개수로의 부족으로 때때로 가뭄이 들어 용수가 부족하면 농사의 시기를 놓치는 경향이 빈번하던 것을 딱하게 여겨 거액의 사재를 들여 성종 15년 갑진 년인 1484년에 향촌 유지들과 더불어 세칭 아버지보라 일컫는 대리보를 만들었다.

이로 인하여 오원강 서쪽 신평면 대리 들녘의 농사를 가뭄을 타지 않고 편하게 짓게 하였다.

 

그 후 두 아들인 참판 최순 공과 교리 최전 공에게 동쪽의 병암 마을과 용산 들녘의 관개를 위하여 사선대 아래에 보를 막도록 이르시어 두 형제는 선친의 뜻을 받들어 중종 3년 무진 해인 1508년에 보를 만들어 고향의 농민들이 물 걱정 않고 농사를 편하게 짓도록 하였다.

 

이 고장 사람들은 아버지보인 대리보와 형제보인 이십리보를 함께 이르러 부자보(父子洑)라 칭하였다.

그리고 삼부자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공덕비를 세웠는데 그들의 공덕이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시고 있는 것이다.

 

전주 최씨 문충공 판서공파 대사간 종중에서는 이십리보 공덕에 대한 해설문을 따로 세워 누구나 쉽게 비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하고 있다.

 

이십리보 옆에 세워진 영벽정(映碧亭)은 글자 그대로 오원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푸른 물빛이 어리는 정자다.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오원강물이 굽이쳐 감돌아 가는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이 지역 유지들이 모여 심신을 수련했던 곳이 영벽정이다.

 

 

이 정자는 이 지역 유지들이 세운 정자인데 정자 뒤의 암벽에 정자를 세운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연정 이상만, 학인 이종근, 중암 이영만, 초은 이공근, 청람 유문기, 석정 김용태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시기가 단기 4268년(서기 1935년)이라고 새겨져 있다.

 

당시만 해도 신선들이 노니는 오원천이 굽어 흘러가는 곳으로 풍광이 뛰어난 곳이었는데 지금은 바로 옆으로 남원을 향하여 달리는 4차선 다리가 높이 놓이고 시선대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턱 밑까지 개설됨으로써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외지고 그늘진 곳이 되고 말았다.

 

이십리보 공덕비도 영벽정 바로 옆에 쓸쓸히 서 있다.

 

비록 외진 곳에 서 있다고 하나 부자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고충을 풀어주었던 대리보와 이십리보를 만들어준 삼부자의 얘기는 이십 리뿐만 아니라 수백수천 리까지도 널리 퍼져 나가야 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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