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동란은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희생과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말로 다 할 수 없고 글로 다 쓸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뿌려놓았다. 그 이야기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산천이 온통 관련되지 않은 곳이 없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작은 고갯길 하나에도 아픈 이야기는 숨어 있다.
전주시 인후동에서 철길을 지나 소양 쪽으로 나가다가 금상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솔개재다.
여기에도 한국동란의 아픈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들을 무단 학살하여 암매장해 버린 비운의 고개다. 그것도 적군이 아닌 우리 국군에 의해 희생된 것이다.
이곳 솔개재에는 고갯마루에 안내판 하나가 서 있다. 행정자치부 과거사 관련 업무지원단과 전주시장이 세워놓은 안내판이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전주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희생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4일부터 7월 20일까지 전주형무소 재소자 중 여순사건 연루 혐의자 및 좌익사상범 1,500명(당시 전주형무소 교독관 증언)을 인민군 남하 시 인민군에게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곳 전주시 산정동 솔개재를 비롯하여 완산구 효자동 공동묘지, 황방산, 건지산, 전주농고 동쪽 문 야산 기슭, 현 전주한전 자리와 전 완주군청 자리 등으로 끌려와 국군 제7사단 3연대 및 해병대에 의해 적법 절차 없이 집단 학살되어 고귀한 생명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유해 매장 추정 지번
전북 전주시 덕진구 산정동 산 41-1번지 일대(솔개재)
위 장소는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 발생한 「전주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의 집단 희생 유해 매장 추정지이므로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2016년 10월
행정자치부 과거사 관련 업무지원단장
전주시장
이곳 솔개재는 전주의 국도대체 우회도로가 개설될 계획이 있는데 국도건설 현장에 한국전쟁 때 국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유해가 무더기로 묻혀 있어 서둘러 유해 발굴에 나서지 않으면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주형무소 재소자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솔개재
민간인 학살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주형무소에 갇혀 있던 민간인들이 무참히 학살된 사건인데 처음에는 남한 국군에 의해 좌익 사상범 1,600여 명이 학살됐고 다음엔 북한 인민군에 의해 민간인 450여명이 학살되어 2,000여 명이 희생된 것이다.
그런데 인민군에 의해 1950년 9월 벌어졌던 집단학살은 정부와 전주시에 의해 진상파악과 추모행사, 추모비 건립 등 아픔과 상처를 보듬는 일련의 노력들이 진행돼 왔지만 전쟁 발발 직후 서울이 인민군 수하로 떨어지던 6월 28일부터 한 달 동안 우리 국군에 의해 벌어졌던 대규모 학살은 오히려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시신 수습도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곳 솔개재에서는 발굴 작업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희생자 매장 추정 지역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황방산에서는 34구의 유해를 찾아내었고 2차 발굴을 서두르고 있다. 황방산에는 1,000여 구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으며 미군 비행기가 서너 차례 폭격을 했는데 그 지점을 중심으로 발굴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
전북에는 전주 외에도 임실 청웅을 비롯하여 고창에도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이 있다.
임실 청웅에서는 국군들이 좌익 사상범들과 마을 주민들이 숨어 있는 주변의 폐광이 된 굴 입구에 고춧대를 모아 불을 질러 매운 연기로 질식을 시킨 사건이 있었다. 그들의 수가 적게는 70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을 것이라는 증언이 있다.
‘고창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은 1949년 8월부터 1952년 1월까지 전북 고창군 부안면, 해리면, 무장면, 흥덕면, 심원면 등의 지역에서 군경의 수복 작전과 좌익세력 협조자 색출 과정 등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거나 상해, 실종된 사건을 말한다.
노무현 정부 때 발족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전국의 수많은 민간인 학살사건 현장 중 유해 발굴 우선 대상 사건으로 전주형무소 사건을 선정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종료되는 바람에 유해 발굴이 이뤄지지 못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서 국회에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구성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전북 고창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과 ‘전주형무소 재소자 희생 사건’ 등 241건에 대해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은 해방 후의 극도의 우익, 좌익의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일어났던 제주 4‧3사건이나 여순 사건 등으로 좌익사범들을 전국의 형무소에 분산 수감한데서부터 시작되었다.
1948년 11월 4일에서 25일 사이에 여수, 순천, 광주, 대전에서 여순사건 관련으로 1,931명이 재판을 받아 1,353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전국의 각 형무소에 분산 수감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우리 국군이 인민군대에게 밀리면서 서울을 빼앗기게 된 때부터 적에게 동조할 염려가 있다며 형무소 재소자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혀 좌익 사상범이 아닌 민간인 재소자들은 인민군에 의해 또 학살되었다. 심지어는 마을 앞의 전선이 절단되어 절취 당했는데 애매하게 마을 청년들이 잡혀 들어가 전선 절취범으로 투옥되어 있다가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아무리 해방 후 혼란기와 전시에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합당한 이유나 근거 없이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학살을 한 것이다. 그것도 적군이 아닌 우리 국군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당한 것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는 인도주의에 반한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하고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은 불법행위인 것이다.
하루빨리 아무런 이유나 영문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의 유해를 찾아서 가족에게 돌려주고 적법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