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명희가 죽은 명희를 찾아가다

소설가 최명희 묘소를 찾아서

작성일 : 2022-02-04 05:18 수정일 : 2022-02-04 13:09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소설가 최명희는 『혼불』을 쓸 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원고를 쓸 때에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때때로 엎드려 울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바위 몇 개를 구멍을 냈을 것이고 『혼불』 같은 명작이 더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혼불』에 혼을 담은 채 가더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누워 있는 건지산 ‘혼불문학공원’에는 오늘도 그를 그리는 발길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름이 같은 명희를 데리고 최명희 묘소를 찾아갔다. 살아 있는 명희가 죽은 명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가 누워 있는 곳은 뒷 건지산 서쪽 끝이다. 묘소를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가장 쉽게 찾아가는 방법은 소리문화의 전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차를 세우고 바로 산으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안내판도 있고 길도 곧게 나 있다. 그곳이 너무 싱거우면 소리문화의 전당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산길을 따라 서편 정상을 지나 단풍나무길을 따라 내려가는 방법이 있다.

송천동 쪽에서 가는 방법은 장덕사를 지나 올라와서 내려가는 방법이 있고 오송 저수지를 지나서 가는 방법도 있다.

 

소설가 최명희를 그리는 곳은 이곳 묘소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생전에 놀던 전주시 풍남동의 ‘최명희문학관’에도 있고 소설 혼불의 무대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의 ‘혼불문학관’에도 있다.

 

최명희는 1947년 10월 전주시 경원동에서 태어나 풍남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전주사범 병설중학교를 거쳐 전주기전여고를 다녔다.

고등학생 시절 전국적인 각종 백일장에서 장원을 휩쓸었으며 고3 때 쓴 수필 「우체부」가 박목월, 전규태 공저인 고등 작문 교과서에 예문으로 실리기도 할 정도의 뛰어난 글쟁이였다.

전북대학교 국문학과를 다니면서 전국 대학생 문예 콩쿠르에 소설이 당선되기도 하였다.

 

모교인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와 서울 보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국어 선생님을 하다가 교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서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발을 내민 후 이듬해인 1981년에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이 당선되어 혼불의 집필이 시작되었다.

 

「혼불」은 1980년 4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6년 12월까지 17년 동안 집필한 대하소설이며 총 5부 10권으로 출간하였다.

 

소설 혼불은 1988년부터 1995년 사이 신동아에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 연재 기간인 7년 2개월 동안 연재가 되었다.

이 소설로 최명희는 세종문화상, 여성동아대상, 호암예술상, 단재상 등의 상을 받게 되었다.

 

최명희가 혼불에 쏟은 정성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각고의 세월이었다. 혼불의 무대가 된 중국 동북지방과 선양, 무단강 유역을 돌아다니며 조선족을 만나 취재한 기간만도 두 달이 남으며 암에 걸려 세 차례의 수술과 투병생활을 하면서 원고지 12,000여 매의 분량을 써냈다.

 

혼불에 나오는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은 최명희 아버지 최성무의 본향이며 이곳은 삭녕 최 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500년 동안 살아온 터전으로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은 입향조(入鄕組) 최수웅은 최명희의 17대 선조다.

지금 이곳에는 혼불문학관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주변에는 소설 혼불에 나오는 지명들이 즐비하다.

 

혼불을 통하여 최명희는 방대한 고증과 치밀하고 섬세한 언어 구성, 생기 넘치는 인물 묘사로 우리 민족혼의 원형을 빚어냈으며 서민들의 생활 속에 녹아 있는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모국어를 통하여 전통문화와 민속 풍습을 폭넓게 표현하여 한국문학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소설 혼불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부터 1940대의 전라북도 남원의 한 유서 깊은 가문인 매안 이 씨 문중에서 무너져 가는 종가를 지키는 종부 3대와 이 씨 문중의 땅을 얻어 소작을 하는 상민 마을 사람들의 삶을 격랑 속에서도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켜나가는 양반사회의 기품과 평민과 천민의 고난과 애환을 그렸다. 특히, 남원 지방을 중심으로 전래풍속과 방언을 풍부하게 구사한 소설이어서 더 친근하다.

혼불에 나오는 갖가지 자료들은 민속학자, 국어학자, 역사학자 및 판소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그는 병을 얻어 투병생활을 하면서 혼불을 써 나갔다.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 않고 더 오래 살았더라면 혼불 외에도 또 다른 명작도 나왔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고 아쉽기만 하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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