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30분 거리의 가까운 곳이면서 가족들이 함께 관광과 문화와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관촌 사선대(四仙臺)가 있다.
사선대는 네 명의 신선이 등장을 하고 선녀와 까마귀가 등장을 한다. 주변의 운수산의 신선과 마이산의 신선도 이곳으로 왔다 하니 아득한 옛날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무릉도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선대는 1985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받은 곳이다.
섬진강 상류인 오원천 맑은 물이 산 밑을 휘돌아 흐르면서 기암절벽을 만들어 놓고 나무가 울창하게 욱어져 천혜의 풍광을 가진 데다 넓은 잔디광장과 조각공원을 비롯한 각종 시설을 더해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잠시 찾아와 심신을 달래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이곳에는 신선이 놀던 곳이라 잠시 나도 세상 일 잊고 신선이 되어보는 일도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사선대라는 이름은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마이산의 두 신선과 임실 뒷산인 운수산의 두 신선이 이곳 사선대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들은 맑은 물이 흐르는 오원천 기슭에 모여 놀면서 병풍처럼 아름다운 주위의 풍경에 취하여 대에 오르기도 하고 바위 위를 거닐기도 하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려 놀기도 했고 어느 때는 선녀들이 내려와 함께 놀기도 했는데 어느 날 홀연히 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신선을 호위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다.
그래서 그곳을 신선과 선녀들이 놀았다 하여 사선대(四仙臺)라 하고 까마귀가 놀던 곳이라 하여 오원천(烏院川)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사선대 신선들을 본딴 선비들의 행적들이 있어서 사선대의 이름을 더 각인시켰다.
조선 정조 때 관촌면 주천리의 이달효(李達孝)는 아호를 호산(湖山)이라했는데 문장이 뛰어나 호산집일책(浩山集一冊)을 펴내기도 하였다. 그는 호남의 명사들과 널리 사귀었는데 임실 현감과 전주 판관, 남원 부사 등을 불러 넷이서 자주 오원강 위에 배를 띄워 놓고 놀았다 한다.
이들 네 사람들은 나이가 든 노년기에 이르러 이곳에 모일 때에는 관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었음으로 마치 네 사람의 모습이 신선과도 같았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이 놀던 곳을 사선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사선대 입구에 있는 영벽정이라는 자그마한 정자도 이 지역 유지들이 오원천에 발을 담그며 신선놀음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사선대에는 넓은 잔디밭과 누각이 있으며 옆에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조각품들은 가까운 오궁리 미술촌에서 작가들이 직접 제작한 조각품들을 전시한 것이다.
사선대 잔디광장에서 바라보면 앞산의 정상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35호로 지정되어 있는 운서정이다.
운서정은 조선시대 승정원의 정 3품 당상관인 승지 김양근의 아들 김승희가 부친의 덕망을 기리기 위하여 1923년부터 1928년까지 6년에 걸쳐 지은 정자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지사들이 모여 망국의 한을 달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던 곳이라고 한다.
사선대 입구 삼거리 작은 동산에는 전국을 움직이는 이 지역 임실문학회원들이 세워놓은 '임실문학비'가 있다. 현대판 선비들인 것이다. 이 비를 보면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학인들이 누구인가 알 수도 있다.
다리와 철길 아래를 지나 사선대 입구에 이르면 이 지역 농민들을 위해 오원천을 막아 물을 대어 가뭄에도 농사를 짓게 해줬던 참판 최순과 교리 최전 형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관민이 합동으로 세워준 형제보라고 불리는 이십리보에 대한 공덕비도 서 있다.
이곳 사선대에서는 해마다 전국적인 축제인 ‘소충‧사선문화제’가 열리고 있으며 ‘사선녀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곳이다.
나라고 신선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루쯤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이곳 사선대에 와서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여 신선이 되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그날 하루만이라도 세상 근심 걱정하지 말고 신선처럼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