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방 구들장을 캐내던 근대유산 지역

전주 미래유산, 행치마을을 찾아서

작성일 : 2022-02-06 05:06 수정일 : 2022-02-07 08:36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주의 동쪽을 자동차들이 달리는 동부대로.

동부대로와 나란히 놓인 철길을 따라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달리는 전라선 철로.

 

그 두 길을 따라 함께 달리던 자동차와 기차가 잠시 갈라져서 달리는 곳이 전주시 덕진구 아중역 부근이다. 기차는 굴속으로 들어가고 자동차는 신호등에 의해 잠시 멈춘다.

아중지역이 개발되면서 이곳 사람들을 위해 아중역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은 기차의 고속화에 따라 작은 역들은 제구실을 못하게 되어 폐쇄된 곳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아중역이다. 최근에는 레일바이크를 설치해 잠시 번득이다가 그마저도 손을 놓았다.

 

이곳 아중역 뒤쪽 동네가 행치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나갈 데가 없는 소쿠리 같은 곳인데 그나마 터져 있던 앞을 철로가 지나가면서 둑을 높이 쌓아버려 동서남북이 꽉 막힌 곳이다. 그래서 네온이 번쩍거리는 아중지역에서 러브호텔 지역과는 다르게 철길 아래로 놓인 길을 지나면 갑자기 시골마을에 온 듯이 조용해져 버린다. 조용히 수양하라고 마을 뒤에 암자도 있다.

 

마을 입구에 안내판이 하나 서 있다. 그런데 그 옆에 또 하나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안내판 내용이 범상치 않다.

“전주 미래유산”이라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설명이 쓰여 있다.

 

“이곳은 우리의 고유한 주거문화인 온돌(구들)에서 중요한 재료인 구들장을 채취하던 마을이다. 구들장은 넓고 평평한 돌을 채취하여 사용하였으며 주변지역으로 판매되었다.

구들장 돌을 활용한 우물, 담장 등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으며 이를 통해 옛 구들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행치마을은 우리 조상들의 건축 기술을 뽐내는 한옥에서도 가장 자랑스러운 온돌방의 구성물인 구들장을 생산해 내던 마을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온돌방(溫突房)을 사용하여 왔다. 온돌방은 구들을 놓아 방을 따뜻하게 하는 방을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대부분이 뜨끈뜨끈한 구들장의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구들장은 너무 두꺼워도 방이 쉽게 따뜻해지지 않고 너무 얇아도 빨리 식기 때문에 크기가 적당해야 한다. 그리고 강도가 약하면 깨져서 방바닥이 무너지기 때문에 단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구들장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방이 따뜻하기도 하고 춥기도 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다.

전에 시골에서 보면 조금만 불을 때어도 따뜻한 방이 있고 아무리 불을 때어도 썰렁하기만 한 방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방이라도 한쪽은 따뜻한데 한쪽은 차가운 방도 있었다. 그것은 구들장을 놓는 기술의 차이라 했다. 부엌에서 불을 때는 아궁이는 하나지만 방바닥 밑의 불길이 지나가는 길은 여럿인데 그 불길이 골고루 잘 지나가도록 배치하는 것이 기술인 것이다.

 

한옥의 구들방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방이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다. 온돌의 장점을 그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아마 기술을 익히기가 쉽지 않아 습득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따뜻한 온돌 덕분에 그 방에서 함께 살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가족에 대한 정과 그리움이 많았을 것이다.

 

행치마을이 바로 그 구들장을 생산해 내던 곳이다. 이곳에서 캐낸 구들은 전주를 비롯한 각 지역으로 공급되었던 것이다.

집을 새로 지을 때마다 방바닥에 구들장을 깔아야 하고 구들을 놓은 지 오래되면 깨지고 약해져 보수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구들장의 사용처는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행치마을 이집 저집에 담장을 쌓아놓은 돌들이 구들이다. 구들로 사용하고 남은 돌이나 사용하기 부적절한 돌들을 이용하여 담을 쌓았던 것이다. 담장뿐만 아니라 우물을 쌓아올린 돌도 구들을 사용했고 신발을 신고 벗는 댓돌도 구들을 사용했다. 곳곳에 구들을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행치마을에서 구들장으로 썼던 돌로 쌓은 담

 

그래서 전주시에서는 행치마을을 “전주 미래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왜 마을 이름을 행치(行峙)라 했을까?

행(行)은 ‘갈 행’이다. ‘가다, 걷다, 돌아다니다, 달아나다’의 의미가 있다.

치(峙)는 ‘우뚝 솟을 치’다. ‘언덕, 우뚝 솟다’는 뜻으로 쓰인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사방이 산으로 꽉 막힌 곳이다. 어디 갈 데가 있다고 가라는 것인가? 그것도 우뚝 솟은 고개를 넘어가라는 말이 아닌가?

행여 산으로라도 길이 열려 있나 하고 골짜기를 따라 난 길을 들어가 보니 극락암이라는 암자가 나온다. 그리고 길은 거기에서 막혀 있다.

 

극락암(極樂巖)은 1926년에 이계진(李桂眞) 화상(和常)이 세운 암자다. 극락암이 자리한 행치봉은 해발 166m로 상당히 높은 산이다. 그래서 산봉우리에는 산불 감시소가 있다. 산불 감시소는 주변의 산들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설치하는 것으로 보아 제법 높은 봉우리가 분명하다.

 

그 행치봉을 넘어가라는 말은 아닌 듯싶다. 그랬다면 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내려오면서 곰곰 생각해보니 행(行)에는 ‘쓰다, 베풀다’는 뜻도 들어 있고 치(峙)에는 ‘쌓다, 골고루 저장하다‘는 뜻도 들어 있음을 알았다.

이곳을 행치라 했던 것은 높이 솟은 언덕을 걸어가라는 뜻이 아니고 이곳에서 나는 구들장이 방안에 골고루 불길을 저장하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라는 뜻일 것이다. 비록 산으로 꽉 막혀 있는 곳이지만 마음 옹색하게 먹지 말고 널리 베풀라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행치마을은 좁은 곳이 아니다. 넓은 곳이다. 마음이 온돌방의 구들장처럼 따뜻하고 넓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 새로 터를 닦고 집을 지으려고 준비한 곳들이 눈에 띈다.

새로 집을 지어 행치마을에 들어와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본래의 행치(行峙)라는 말의 뜻을 잘 알고 욕심부리지 말고 널리 베풀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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