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동쪽으로 길게 벋은 승암산과 기린봉 줄기 아래에 있는 낙수정에는 나라를 지키다가 호국영령이 된 국군과 경찰들의 시신을 묻은 군경묘지가 있다.
군경묘지가 있는 산줄기가 예로부터 전주를 지켜왔던 동고산성과 동고사가 있는 바로 아래다. 그 산줄기는 이목대와 오목대로 이어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조상들이 살았던 왕가의 정기로 흐른다.
한국전쟁의 포화가 자욱하던 1950년 6월부터 휴전이 되던 1953년 7월까지 장장 3년 1개월 동안 수많은 젊은 목숨들이 꽃처럼 스러져 갔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군경묘지다.
이곳 군경묘지에는 국군 영령 300여 기와 경찰 영령 100여 기, 합하여 400여 기의 비가 서 있다.
아래에 있는 군군묘지에는 질서정연하게 정열 되어 있는 묘비석에 성명과 계급, 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 전사했으며 누구의 아들이고 남편인지가 적혀 있다.
계급도 이등병부터 일등병, 상병, 하사, 육군 이등중사 등 여러 가지다. 계급도 없이 ‘징용’이라고 쓰여 있는 비석도 있다.
전사한 지역도 거의가 휴전선을 끼고 있는 전방이다. 금화, 철원, 춘천, 연천, 음성, 고성, 장단, 양구 등 다양하고 그냥 강원도 지구라고만 쓰여 있기도 하고 중부지구라고 쓰여 있는 것도 있다. 제5육군병원이라고 쓰여 있는 것도 있다.
대부분이 나이 어린 청년들이어서 장가도 가지 못한 사람들이라 비석 옆면에 아버지 이름이 쓰여 있다. 형이나 처가 쓰여 있는 것도 더러 있다.

위쪽에 있는 경찰묘지에도 군군묘지와 같이 전면에 성명과 계급이 쓰여 있고 뒷면에는 전사한 날짜와 장소가 있는데 경찰이라 거의가 후방지역인 전라북도 지역에서 전사한 사람들이다.
완주 고산, 완주 안덕원, 임실 두곡, 임실 관촌, 정읍 칠보도 있고 동상면 수만리 전투와 전주에서 전사했다고 쓰여 있기도 하고 전주형무소라고 쓰여 있는 사람도 있다.
다소 큰 비석에는 ‘전몰 경찰관 15 용사의 묘’도 있고 5명의 이름이 같이 쓰여 있는 것도 있다.
낙수정 군경묘지를 찾아가는 길은 병무청 부근에서 남노송동을 거쳐 올라가는 길과 한옥마을 오목대 부근 간남대 마을에서 가는 길이 있다. ‘동고산성 가는 길’을 따라 가면 자동차 길이 끝나는 지점이니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낙수정 군경묘지에서 묘비 앞에 서면 가슴이 저려온다. 어쩌다가 한국전쟁 그 시기에 청년의 나이에 이르러 무지갯빛 꿈을 포화가 가득한 전쟁터의 하늘에 날려 보내고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와야 했던가. 거의가 시신도 없이 전사통지서 한 장이었을 것이다. 그 통지서를 받은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으며 그 아픈 마음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을까?
학창 시절, 이곳 낙수정 산동네에서 살면서 현충일에 이곳 군경묘지에 와보면 기념식을 하는데 식순 가운데 영령을 위한 발포 순서가 있었다. 총을 든 군인들이 십여 명 나와서 공중을 행해 총을 쏘는 순서였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참고 있던 유가족들이 총소리와 함께 일제히 소리 내어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었다.
할머니 한 사람이 군경묘지 내의 자갈밭 길을 빙빙 돌며 걷고 있다.
밖의 좋은 길을 걷지 왜 불편하게 자갈밭 길을 걷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여기 군경묘지에 묻혀 있단다.
그랬구나. 아들의 혼이 여기 있으니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으려고 자갈밭 길을 걷고 있구나. 그런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의 상처를 안고 아프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낙수정 군경묘지에는 추운 겨울인데도 햇살이 따스하게 비춰주고 있다.
나라와 겨레의 위기를 몸으로 막아내고 장렬히 전사한 영령들이여!
이곳에서나마 편히 쉬소서. 그대들로 인하여 이곳은 거룩한 땅이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