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공기 속 화학물질, 향기 뒤에 숨은 진실

섬유유연제·디퓨저·방향제 속 VOCs, 집 안이 더 오염될 수도 있다

작성일 : 2025-10-30 16:23 수정일 : 2025-10-30 17:39 작성자 : 한송 기자

 

집 안에 은은한 향기가 퍼질 때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진다.섬유유연제의 포근한 향, 디퓨저의 산뜻한 향, 방향제의 청량한 향까지 — 향은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들이마시는 그 향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숨어 있다.

 

최근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실내 공기 중 VOCs 농도가 야외보다 최대 10배 이상 높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특히 섬유유연제, 탈취제, 디퓨저 등 향기 제품에서 다량의 VOCs가 검출되며, 장기 노출 시 호흡기 질환, 두통, 피부 자극, 내분비 교란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수진 교수는 “섬유유연제나 방향제는 휘발성을 높이기 위해 합성향료와 용제를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포름알데히드·벤젠·톨루엔 같은 유해 화합물이 발생할 수 있다”며 “특히 밀폐된 실내에서는 오염이 더 빠르게 축적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2018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시중에 판매되는 향기 제품 25종 중 80% 이상에서 인체 유해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이 검출됐다. 이 중 일부는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된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와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de)였다. 연구팀은 “이들 화합물은 냄새가 거의 없거나 향료에 가려져 소비자가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에서는 그 영향이 더 크다.체중 대비 호흡량이 많은 아이들은 미세한 농도의 VOCs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알레르기 비염·천식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반려동물 역시 낮은 위치에서 생활하며 바닥 근처의 공기를 더 많이 들이마신다.

 

환경독성학 전문가인 한양대 의대 정태현 교수는 “향기 제품의 VOCs는 단기간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누적 노출이 문제”라며 “호흡기뿐 아니라 신경계, 호르몬 대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무향’ 제품은 안전할까?꼭 그렇지만은 않다. 많은 제조사들이 ‘무향’ 또는 ‘천연’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향을 덜 느끼게 하기 위해 합성향료 조합을 쓰는 경우도 있다.따라서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하고, ‘향료(fragrance)’나 ‘perfume’으로만 표기된 제품은 주의가 필요하다.

 

실내 공기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첫걸음은 환기와 절제다.하루 두세 번 10분 이상 환기를 하고, 향 제품 사용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또한 자연 유래 재료(베이킹소다, 식초, 천연 오일 등)를 활용한 탈취나 세탁법이 대체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박수진 교수는 “집 안 공기를 맑게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화학물질을 덜 사용하는 것”이라며 “향을 덜 쓰는 것이 곧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종종 ‘좋은 향’을 청결과 위생의 상징으로 여긴다.하지만 진짜 깨끗함은 향기에서 오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기의 투명함에서 시작된다.‘무향의 건강함’을 선택하는 용기 — 그것이 오늘날 가장 필요한 생활 습관일지 모른다.

한송 기자 borianna@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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