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산 축구장 옆 산자락 아래 작은 동산이 있다. 여기는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사람들의 눈에 별로 띄지 않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요리조리 생긴 산책길을 오고 가지만 미처 눈길이 가지 않는 곳이다.
전북대병원에서 소리의 전당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따라가다 보면 축구장이 나오면서 길이 양쪽으로 갈린다. 거기 비닐을 둘러쓴 휴식장소가 하나 있는데 바로 그 옆에 애향원(愛鄕苑)이 있다.
이 애향원은 좀 색다른 애향원이다.
흔히 애향원이라 하면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세운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본 관동지구 전북인회’에서 세운 애향원이다. 관동지역은 일본인들에 의한 한국인들의 피해가 가장 심했던 지역이다.
거기 애향원(愛鄕苑)이라는 큰 돌비가 서있는데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여기 건지 터울 애향의 동산에
망향을 달래는 사연들이 쌓여
그 이야기 나누며 천 년을 어울려 살리라.
너와 나의 뿌리가 내린 땅
고향 찾아 백 년의 시름을 달래고
천 년을 어울려 기뻐하리라.”
그리고 그 아래에 ‘재일 관동지구 전북인회’ 이름과 회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고문, 회장, 부회장, 감사, 상담역, 회원 등 42명의 직책과 이름이 적혀 있다.
가운데 서 있는 애향원 돌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백의민족(白衣民族), 왼쪽에는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쓰여진 돌비가 서 있다. 일본에서 핍박받고 살면서 백의민족인 동포들이 얼마나 그리웠으며 두고 온 삼천리 금수강산이 얼마나 그리웠을 것인가. 그래서 그런 돌비를 세웠을 것이다.

애향원 앞 오른쪽에는 재일본 관동지구 전북인회에서 세운 비가 하나 더 있다.
해봉 김기철 초대회장 기적비(海峰金己哲初代會長紀蹟碑)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뒷면에 김기철 회장에 대한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김기철 회장은 1920년 5월 17일에 전북 완주군 고산면 서봉리에서 김해 김 씨의 후예로 출생하였다. 그는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자 나라를 빼앗은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며 홀몸으로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갔다.
그는 일본의 한 복판인 동경에 가서 광복운동을 벌였다. 해방이 되었지만 일본에서 핍박받으며 어렵게 살고 있는 동포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일본에 남아 있는 동포들의 단합과 권익보호를 위해 일했다. 주식회사 로고상회를 경영하면서 동포들의 경제적 기반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 동경지부를 결성하였다. 그 후 재일본 관동지구 전북인회를 조직하여 초대회장을 맡아 동포들을 돕는 일에 매진하였다.
일본에서도 관동 지역은 우리 동포들이 일본인으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1923년 9월에 일본 관동지역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집이 무너지고 화재가 발생하였다. 그로 인해 인심이 나빠지자 일본 당국은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낭설을 퍼뜨려 일본 군경과 민간인들에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폭력을 당하고 학살을 당하였다. 약 6,000여 명이 학살을 당했는데 일본 당국은 정부나 군경에서 한 일이 아니고 자경단에서 저지른 일이라 핑계를 대고 자경단원들을 소환하여 재판을 했는데 모두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당시에 일본은 공업을 발전시켜 노동자가 많이 필요했는데 한국에서 노동자를 모집해 가서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본인들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김기철은 바로 그 관동지역에서 동포들을 돕는 일을 했던 것이다.
그 후 한국반공연맹이사, 대한민국 평화통일 정책자문회의 의원을 하면서 나라를 위하는 일에 봉사하여 국민훈장모란장을 받았으며 전북애향 대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1988년 9월 10일, 세상을 떠나기까지 애국운동과 애향운동에 몸 바쳐온 사람이었다.
이러한 공로를 그냥 묻혀둘 수 없어 1991년 4월 22일에 재일본 관동지구 전북인회에서 이곳 건지산 애향원에 기적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그의 기적비에는 그에 대한 공로와 함께 시 한 수가 적혀 있다.
어려서 세우신 뜻 오롯이 가꾸신 뜻
절절한 슬픔도 살아생전 피와 땀도
뒷날에 꽃으로 피어 열매 짓는 분일실레
건지산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지 말고 잠깐 재일본 관동지구 전북인회에서 만들어 놓은 애향원에 들려 고향을 떠나 일본에 가서 살았던 그들의 애환과 애향심을 생각해 보고 우리 지역 고산 사람인 김기철 회장의 공적도 살펴보고 갈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