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이름이든 땅의 이름이든 의미가 나쁜 뜻으로 지어진 것은 없다.
모두가 좋은 의미를 품고 있는 이름으로 짓는다.
발음상 좋지 않게 들리는 이름이라도 한자의 의미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 담긴 뜻은 좋은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전주 남쪽 상관 쪽에 ‘죽음 마을’이 있다. 언뜻 듣기에는 죽는다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의 죽음은 대나무 죽(竹) 자에 응달 음(陰)이다. 대나무가 무성하게 욱어져 그늘이 짙다는 뜻으로 대나무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전주 기린봉 너머 아중 저수지 건너에서 한참을 들어간 곳에 있는 왜망실(倭亡室)이다.
마을 이름에 망할 망(亡) 자를 쓴다.
아무래도 찾아가 봐야 할 마을 같아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왜망실을 찾아가려면 일단은 아중 호수 길을 거쳐야 한다. 후수의 물 위로 난 수변길을 걸어서 왜망실로 가는 관암 마을을 지나 작은 다리인 관암교를 건너가야 한다. 관암이란 마을 뒷산이 갓을 쓴 사람 모양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관암교를 건너면 바로 동부대로와 전라선 철길 사이에 '왜망실' 마을 안내석이 서 있다. 거기 보면 왜망실은 한 동네가 아니고 아중, 아하, 용계, 재전 등 여러 동네를 일컫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망실은 정유재란 때 왜군들이 전주를 공격하기 위해 진을 쳤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전주를 점령하지 못한 아쉬움을 풀어보려고 왜군은 남원성 전투를 마치고 전주성을 향하여 군사를 몰고 오다가 좁은목에 조선 군사가 매복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피하여 완주군 상관면 원색장 마을 뒤 성황 고개를 넘어 이곳 왜망실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왜망실에 와보니 횃불을 든 군사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황급히 옆의 골짜기로 도망을 쳤는데 그 곳에 조선군이 매복해 있다가 공격을 하는 바람에 왜군은 전멸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사실 왜망실에 있었던 군사는 실제 군사가 아니고 허수아비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전주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왜망실은 전주를 지켜온 역사적인 땅이다.
그 후 왜군들이 이곳에다 진을 쳤다 해서 왜막실(倭幕室)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군이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왜막실을 왜망실(倭亡室)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혹자는 살아남은 왜군들이 이곳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해서 ‘왜막실’이라 부르다가 ‘왜망실’로 불려졌다고도 한다.
그때에 그곳에서 살았던 왜군들이 귀화해서 조선인이 되었는데 성을 ‘왜막실 김 씨’라고 했다고 한다. 후에 김일성의 선조들인 전주 김씨 종가에서 이들을 받아들여 전주 김씨의 성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이곳에 남아 있던 전주 김씨의 족보를 모두 가져가 버려서 그 내막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곳에는 모기가 없다고 한다. 여느 시골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이곳에 모기가 없다는 것은 기이한 일인데 진묵대사의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진묵대사(震黙大師)가 이곳 왜망실에서 나이 든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마을 뒷산에 있는 일출암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여름철 모기 때문에 힘들어 하자 산신령에게 고하여 모기들을 다 쫓아내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이곳에는 모기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는 이름난 명당이 있는데 한 집안뿐만 아니라 온 동네에 명당바람의 영향이 미쳐서 자손이 없어도 천 년 동안은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생긴다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곳이기에 왜망실을 소재로 한 창작 판소리가 만들어졌다.
“왜망실뎐”이 그것인데 극작가 최기우 씨와 소리꾼 이용선, 최재구 씨가 왜망실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이 곳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을 이야기와 살아온 개개인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구술을 채취하여 완성한 창작극이라 한다.

후백제 시대 기와를 구웠던 왜망실 가마터
이곳에서는 후백제 때에 토기를 구웠던 가마터가 있다. 이곳에서 구워낸 기와로 풍남문 지붕을 덮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창작 판소리 ‘왜망실뎐’에서 소리꾼 이용선과 최재구가 구수하게 풀어낸다.
왜망실에서 출토된 토기는 인근의 동고산성과 전라남도 영암의 구림도기 유적 유물과 유사하다. 이로 미루어 제작 시기를 후백제 시대로 보고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가마터이며 최대 규모의 가마터였던 진안의 도통리 유적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왜망실은 이름과는 달리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아직은 겨울인데도 이곳에 오니 봄기운이 감돈다. 산을 깎아 집을 짓고 있는 공사장이나 과수원에 거름을 주고 있는 농부의 손길에서 벌써 봄이 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곳까지 걸어오느라 다리가 아픈 때에 시내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121번 버스가 이곳까지 들어오는 것이다. 이곳 재전에서 혁신도시를 지나 원상림까지 가는 버스다. 종점에서 곧 출발하겠거니 하고 기다려도 버스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종점에 왔으니 느긋하게 쉬어가겠다는 심보다. 할 수없이 다시 걸어 나오는데 아중 저수지에 다 올 때까지 버스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 보여도 이곳이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1가 시내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전주 시내와는 다른 곳이다.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한가롭기 그지없는 전주 변두리 중에서 이곳이 제1번지가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