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동쪽에 봄이 왔다.
매화는 화투장에 보면 2월 매조로 나온다. 그것이 음력에 해당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양력으로 맞는다.
아직은 겨울이 분명하다. 아침 기온이 영하다. 오늘이 정월 대보름인데벌써 매화꽃이 피었다.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에 있는 정수장 서쪽 언덕바지에 서 있는 매화나무에 매달려 있던 꽃망울이 터진 것이다.
다른 곳에 서 있는 매화나무도 꽃을 피웠나 하고 부리나케 산의 남쪽 따뜻한 곳에 있는 전주 류 씨 시조묘 옆에 있는 시사제로 달려가서 뜰에 서 있는 매화를 보니 아직 꽃을 피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찬바람 부는 산의 북쪽에 자리 잡은 매화가 먼저 꽃을 피운 것이다.
꽃도 사람과 같은가 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먼저 성공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바람도 세지 않고 따뜻한 햇살도 좋은 곳에 있는 매화보다 바람도 거칠고 햇볕도 많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나무가 먼저 꽃을 피운 것이다.

전주역 바로 앞산에 있는 정수장은 전주시민의 수돗물을 공급하는 곳이다. 진안 용담댐 물을 이곳까지 끌어올려 높은 곳에서 바로 물을 쏘아 부어 수돗물이 콸콸 잘 나오게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정수장 둘레를 도는 트랙의 길이가 자그마치 440m다. 공설운동장 트랙보다 더 길다. 그래서 세 바퀴만 돌면 1,000m를 훌쩍 넘길 수 있다. 하루 꼬박꼬박 1만 보를 걷기를 작정한 나 같은 사람은 산을 빙빙 돌다가 1만 보가 차지 않으면 이곳 정수장에 와서 모자라는 걸음 수를 채운다.
이곳 인후동 정수장은 전주시 광역 상수도 사업으로 1994년 6월부터 2년 6개월에 걸쳐 전주역 앞의 도당산 줄기를 깎아 만든 것이다. 물탱크 위를 흙으로 덮고 잔디를 심어 보호하고 주변에는 갖가지 나무를 심어 정원화 한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매화나무다. 여기에는 홍매화 나무도 있고 청매화 나무도 있다. 청매화 나뭇가지에는 파르스름한 꽃망울이 맺혀 있는데 홍매화가 먼저 꽃망울을 터트린 것이다.
무엇이든지 2등은 빛을 못 본다. 맨 처음이어야 대접을 받는다. 내가 렌즈를 들이댄 것도 처음 꽃을 피운 홍매화다. 곧이어 청매화가 꽃을 피울 것이다. 예쁘고 청초하기로는 홍매화꽃보다 청매화꽃이 낫다. 뒤따라 옆에 있는 개나리나 목련이 꽃을 피울 것이고 뒤이어 진달래와 철쭉이 꽃을 피울 것이다. 뒤늦게까지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자귀나무가 꽃을 피우면 봄은 가고 여름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인후동 정수장에는 운동도 하고 꽃도 시기에 맞추어 골고루 구경할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것은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여 봄을 알리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것이다.
복 받을지어다. 전주의 동쪽 도당산에 봄을 알려온 매화여!
맨 먼저 꽃망울을 터트린 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