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열렸던 14회 런던올림픽은 우리나라가 금메달 13개를 따면서 종합 순위 5위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한 기념할만한 올림픽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기록도 하나 남겼다.
선두를 달리는 육상선수에게 최선을 다해 달리지 않고 슬슬 달렸다고 출전 정지를 시킨 것이다.
알제리의 육상선수 타로피크마크로파는 1,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런데 그에 앞서 벌어진 800m 경기에서 예선전 때에 힘을 아끼기 위해 다소 천천히 달렸다. 그래도 예선은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본 심판진들은 그에게 800m 출전 정지 명령을 내렸다. 최선을 다한다는 스포츠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몰랐던 그는 다음 경기인 1,500m에서는 시종일관 힘껏 달려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 하나는 놓친 것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스포츠 정신은 스포츠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다. 사람은 신이 내려준 역량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은 발휘하고 가야 한다. 그러므로 힘들다고 슬렁슬렁하는 일은 일이 아니다. 슬렁슬렁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더욱이나 귀찮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죄악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슬렁슬렁 공부하는 학생은 진정한 학생이 아니다. 열심히 하다가 잠깐 쉬는 것과 처음부터 나태한 것은 다르다.

요즘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인 진제스님의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나태하면 청춘도 일순간에 노인”
진제 스님은 지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신축년(辛丑年) 동안거(冬安居) 해제를 맞이해 내린 법어(法語)에서 대중들의 부단한 정진을 당부하면서 ‘시간이란 신속함이라. 돌이켜 보매 인생 또한 이와 같아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독려했다.
세상 모든 일들을 버리고 조용한 산속에서 사는 스님들은 서두를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하라는 것이다. 졸거나 잡생각을 하면 어김없이 죽비가 어깨를 친다.
게으름은 병이요 죄다.
인생은 딱 한 번만 오고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한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천국은 이 세상 삶과는 다르다. 근심도 걱정도 없이 사는 삶은 꽃으로 사는 삶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유한하다. 주어진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우리의 삶의 한계를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다.
세상을 오래 살았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오래 살았다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야 할 몸을 얼마나 많이 움직였느냐이다.
똑같은 1년 365일을 살았는데 몸이 아파서 병원에 누워만 지낸 사람하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타고 부지런히 돌아다닌 사람하고는 같지 않다.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보면 내가 학창 시절을 잘못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고교시절에 나는 무엇을 하였나 하는 후회가 막급하다.
동창들이 모이면 그때 그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모두들 신이 나서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집과 학교만 왔다 갔다 하였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몇 명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나오지 않으면 이야기할 상대도 없어져 버린다.
그때에 멀리 시외에서 걸어서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할 이야기가 많다. 이 길로도 가보고 저 길로도 가보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의 이야기도 많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살면서 별다른 활동도 하지 않았던 내가 그렇다고 공부를 잘해서 그것으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어찌 보면 다양한 활동에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건강을 이야기할 때에 걷지 못하면 인생이 끝이라는 말을 한다. 걷는다는 것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걸을 수 있는데 발을 아꼈다가는 몸 전체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이제 남은 인생살이라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남은 세월이라도 부지런히 다 쓰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