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선교사 묘역 앞에 서서

천국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작성일 : 2022-03-03 03:56 수정일 : 2022-03-03 08:50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주시 중화산동에 있는 예수병원 건너편 제1주차장 뒤 언덕 위에는 낯선 무덤들이 몇 개 있다.

여기가 낯선 나라 낯선 땅 전주에 와서 사람들에게 문명이라는 눈을 뜨게 해 주었던 개화기 때에 전주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묘역이다.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전주시내에서 다가교를 건너 신흥중‧고등학교를 지나 예수병원에서 길을 건너 예수병원 제1주차장 옆으로 난 길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산길로 접어들어 돌계단을 꼬불꼬불 몇 바퀴 돌아서 올라가면 선교사 묘역이 나타난다.

주소를 통해 찾아갈 사람은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산 40-6번지를 찾아가면 된다.

 

이곳 “선교사묘역‘은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견한 선교사 중 호남 선교를 위해 우리 고장으로 왔던 7명의 선교사 중 2명을 포함하여 그의 가족들과 예수병원에서 헌신하였던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거기에는 “데이비드 해리슨”과 “윌리엄 전킨” 2명의 선교사 묘가 있고 그들 앞에는 세 명의 자녀들의 무덤이 함께 있다.

그 외에도 마티 잉골드의 딸, 구바울 전 병원장의 딸인 윌리엄 크레인, 윌리엄 린튼의 자녀, 티몬스 전 병원장의 자녀 헨리 티몬스, 간호사 로라 피츠, 전주기전여학교 2대 교장이었던 넬리 랭킨, 병원장 프랭크 켈러, 의사였던 박영훈 등 미국 남장로교단에서 파견한 전주선교부와 예수병원에서 헌신한 선교사와 가족 등 모두 17명이 영면해 있는 곳이다.

 

 

전북 지역의 선교는 미국 남장로교의 ‘7인의 선발대’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들은 선교사 묘역에 묻혀 있는 윌리엄 전킨(한국명 전위렴)과 메리 레이번(한국명 전마리아) 부부를 포함해서 윌리암 레이놀즈(이눌서), 페시볼링 부부, 루이스 테이트와 여동생 매티 테이트, 여의사인 리니 데이비드 등이었다.

이들은 1892년 11월에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호남지역인 전라도와 충청남도 서남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데이비드 해리슨은 7명의 호남 선교사 중 제일 먼저 순교한 사람이다. 그가 한국에 올 때 34세의 독신녀였으며 1896년 군산에 와서 어린이와 부녀자를 상대로 선교활동을 했다. 그 후 선교사 윌리엄 해리슨과 결혼을 하여 전주로 옮겨왔다. 그는 전주에서 여성 환자들을 방문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1903년 45세의 일생을 전주에서 마쳤다.

 

윌리엄 전킨(한국명 전위렴)은 7인이 선발대의 한 사람으로 군산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사람이며 군산 영명학교와 멜볼딘 여학교를 세웠다.

호남 최초의 교회였던 전주 서문교회에서 1904년부터 1908년까지 담임목사를 했으며 폐렴에 발병되어 1908년 43세의 나이에 전주에서 일생을 마쳤다.

 

부인 메리 레이번(한국명 전마리아)은 기전여학교 초대 교장을 역임했으며 남편의 선교를 기념하기 위한 교회 종을 전주 서문교회에 기증하여 지금도 보존 중이다.

 

또 7명 중 한 사람인 로라 메이피츠는 전주예수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으며 전주에 온지 6개월만인 32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또 한 사람 넬리 비 랭킨은 기전여학교 2대 교장을 지내기도 하였는데 교육을 담당하다가 1911년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선교사 묘역의 윌리엄 전킨의 묘비 앞쪽에 돌비가 3개가 있는데 낯선 이국에서 풍토병으로 세상을 나오자마자 얼마 살지 못하고 한 살이나 두 살에 세상을 떠난 큰아들 죠지(1893~1894)와 둘째 시드니(1899~1899)와 셋째 프랜시스(1903~1903)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들이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온 젊은 선교사들도 미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그렇게 30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교사로 한국에 온 사람들은 산 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뜻도 통하지 않은 냉대 속에서 굶주림과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선교사 묘역은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 한국 기독교 사적 제30호로 지정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 묘역 뒤편에는 당시에 선교사들이 살던 사택이 8채가 남아 있는데 당시에는 처음으로 본 양옥집이며 한국의 국민을 위하여 몸바쳐온 선교사들의 채취가 남아 있는 곳이어서 오래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성스러운 곳이다. 그 중 엠마오 사랑병원 입구에 있는 마로덕 선교사 사택은 전주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양옥집이라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선교사 묘역과 부근의 선교사 사택은 소중한 곳이다.

지금은 쓸쓸하고 허술하게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이들만큼 활동했던 사람들이 없다. 이들은 우리 전라북도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다가 이 땅에 몸을 묻은 사람들이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온 이들의 흔적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이다. 이곳을 공원화해서 이들의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것이다.

 

현재 선교사 묘지 아래에 부지를 확보하고 “전주 기독교 근대역사기념관”을 짓기 위하여 추진 중에 있는데 참으로 잘한 일이며 바람직한 일이라 할 것이다.

 

천국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와 볼 일이다.

천국이 없다면 그들이 무엇을 위해 좋은 나라 좋은 환경을 떠나 이 낯설고 힘든 땅에 와서 그토록 고생을 했겠는가. 이들이 천국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천국에 가겠는가.

천국은 있어야 한다. 이들의 영혼에 대한 보상책으로라도 천국은 있어야 한다.

 

전주 선교사묘역에서 그들의 묘 앞에 머리 숙여 묵념을 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눈물 난다. 그리고 오늘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가서 선교 활동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 선교사들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숙연해진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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