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시내에 몇 개의 특별한 버스 승강장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승강장”으로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다가교 옆에 있는 신흥중‧고등학교 승강장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독립운동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동화 속의 승강장처럼 보인다. 승강장 지붕 위에 웬 아이가 하나 앉아 있다. 그런데 아이의 머리에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다. 생텍쥐페르의 동화 ‘어린 왕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앞에 커다란 망원경이 놓여 있다. 어린 왕자가 별나라를 바라보고 있나?
그런데 망원경 막에 비친 그림은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뒤에 태극기가 보인다.
승강장 내부에는 세 개의 태극기와 사진이 게시되어 있다.
세 개의 태극기 중 하나는 대한제국 당시에 사용하던 1897년부터 1910년까지의 태극기로 가운데 태극의 문양이 물고기처럼 머리가 있고 꼬리가 있는 문양인데 붉은색의 문양과 파란색의 문양이 서로 맞물려 있는 모양이다.
또 하나의 태극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임시정부 당시에 사용하던 태극기인데 가운데 태극문양이 현재의 태극기보다 왼쪽으로 45도 기울어진 모양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태극기가 게시되어 있다.
태극기 사이에 사진이 걸려 있는데 3‧1 운동 때 태극기를 제작하였던 건물의 사진과 함께 “3‧1 운동 발상지(1919년)”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설명이 쓰여 있다.
“1919년 3월 13일,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학생들은 시민과 함께 남부시장 등 시내 일원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신흥학교 학생들은 학교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하였다.”

또 한 장의 사진은 초기 신흥학교 건물과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인데 “근대교육의 시작 신흥학교(1900년 9월 9일~ )”라는 타이틀 아래 다음과 같은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레이놀즈 집에서 학생 한 명으로 시작된 호남 최초의 근대학교이다. 지역 내 기독교 선교와 근대문화 소개, 항일 민족 운동, 민주화 운동 등의 역사에 큰 기여를 하였다.”
또 한 장은 전주 3‧1 만세운동 재현 그림이 있고 그 아래에 “3‧1 만세운동 재현 행사” 설명이 있다.
“매년 3월 13일 이전 토요일에 신흥‧기전학교, 전주지역 기독교회, 광복회 등의 주관으로 3‧13 독립만세 운동 재현 행사를 해오고 있다. 행사는 기념식, 시가행진, 재현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신흥중‧고등학교 교문 옆에는 “전주 3‧1 운동 기념비”라는 커다란 돌비석이 서 있다. 돌비석의 무게만큼이나 값진 비석이다.
전주신흥중‧고등학교는 개화기에 미국에서 온 젊은 선교사에 의해 호남에서는 최초로 근대교육이 시작된 곳이며 일제 강점기 때에는 독립운동의 요충지였다. 독재 정치 시대에는 민주화 운동의 터전이기도 했다.
전주신흥중‧고등학교에서는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를 위한 학생들의 시위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80년 5월 27일.
광주에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9일째 되던 날이었다.
전주신흥중‧고등학교 학생들은 교실을 박차고 운동장에 집결하여 군사독재 철폐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긴 행렬을 이루며 운동장을 S자를 그리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교문 밖에는 최루탄을 장착한 페퍼 포크와 화염방사기로 무장한 군인들, 그리고 착검을 한 군인들과 진압봉을 든 경찰들이 4중으로 포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찰 헬기가 학교 주위를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이 환히 내다보이는 다가공원 정상에 지휘소를 만들고 전주경찰서장과 육군 제35사단 계엄사령관이 지휘를 하고 있었다. 아차 하면 진압군을 학교로 투입할 태세였다.
일이 잘못되어 그대로 학생들이 밖으로 나가거나 진압대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면 광주 사건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순간이었다.
그때에 선생님들은 어떻게든 학생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을 만류하고 있었고 학교 경영자는 진압대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류를 하고 있었다.
그날 시위는 밖으로 나가지는 않은 상태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하교하는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사태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살펴서 학생들이 무사히 귀가를 하게 되었다. 하마터면 광주사건과 같은 사건이 날 뻔한 일이었다.
그날 교장은 서울 출장 중이어서 학교에 없었고 교감 선생님이 모든 사태를 수습하였다 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3‧1 운동 100주년 기념 승강장을 오고 갔던 전주시민들은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안고 있는 곳임을 알고 이곳을 지나갈 때는 숙연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