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작은 흔들림이 모험이 되는 또 다른 세상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별한 영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소중히 간직한다.
미술가와 사진작가는 다르다.
사진작가는 보이는 그대로를 사진에 담는다. 그러나 미술가는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 작가의 마음에 와서 꽂히는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판화 작가는 또 다르다.
판화는 붓으로 경계선 없이 표현하는 화화와는 다르다. 경계선이 뚜렷하다. 그러므로 간결함과 경쾌감이 동시에 드러난다.
자기가 나타내고자 하는 상을 판화에 새겨 되찍어 내어야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표현이 표출된다.
더욱이나 한지 위에 찍어내는 일은 찍을 때마다 누르는 압력이 달라 다른 작품으로 탄생한다.
김하윤 판화 개인전 《모험담》이 지난 12월 9일부터 전주 서학동 예술촌에 있는 서학동사진미술관에서 열렸다.

젊은 작가 '김하윤 판화전 모험담'의 안내장
《모험담》이라는 어휘가 주는 어감 때문에 대단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전시실을 찾았다. 두 평 남짓한 작은 공간, 아무래도 전에 가정집이었던 곳을 개조하여 전시장으로 만든 것 같다.
김하윤 작가는 《모험담》에 대하여 일반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그는 일반적으로 《모험담》이라는 말이 험난함을 무릎 쓰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지만 김하윤 작가는 특별한 사건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흔들림, 두려움, 기대와 같은 감정들을 끌어안고 한 걸음을 내딛는 태도라고 말한다.
일상의 작은 일들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려는 마음의 발로다.

작품 앞에 선 김하윤 작가
김하윤 작가는 말한다.
“나는 일상에서 얻는 감흥과 깨달음을 자연물의 구조 생(生)의 섭리와 순환의 이미지로 치환해 은유적으로 기록해 왔다.”
작품 속에서 표현하고 있는 나뭇가지는 끝을 알 수 없는 길이자 스스로 그려나가는 지도의 형태로 등장한다.
열매들은 생성과 소멸의 사간을 품고 있으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질문과 성장의 순간들을 상징한다. 그 곁을 맴도는 나무늘보는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 나그네로서의 작가 자신을 비유한 자아적 표상이라 한다.

나뭇가지와 열매와 나무늘보까지 일상의 모험을 이야기 한다.
이번 전시 작품은 수성목판화로 제작된 것이다.
한지에 층층이 쌓아 올린 채색화가 오랜 시간과 이야기를 축적하는 방식이었다면 수성목판화는 장면과 장면 사이의 틈이다. 생각의 파편을 토막토막 잘라 제시하는 단편이다. 그러나 각각의 파편이 하나의 리듬을 이루고 작은 시구처럼 작용한다.
작품마다 제시되어 있는 작품명은 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이것도 판화로 찍어낸 것이란다.
한쪽 구석진 곳에 열매들이 놓여 있다. 이것도 한지로 만든 것이다.

한지로 제작한 판화의 원판
김하윤 작가는 젊은 작가다.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한국화를 전공했다.
한국인의 채취를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대학 재학 중이던 2017년부터 ‘느린 꽃놀이 Ⅰ’을 시작으로 몇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2인전과 단체전을 여러 차례 열었던 작가다.
현재 청년 예술인 그룹 ‘The젊은’ 회원이고 전북판화가협회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미술 지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학교에서 교직에 대한 사명감을 잃은 교사들이 많다. 그냥 교사로서 안주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김하윤 작가는 학생들에게 미술을 통하여 미(美)에 대한 정서를 길러주고자 한다.
소신 있는 교사가 필요한 시대에 적합한 사람이다.
비록 작은 전시실이지만 자주 접할 수 있는 판화가 아니며 한지에 찍어낸 작품이라는 특징을 살린 전시다. 이런 작품도 있고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의 다음 전시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