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 초선지(初禪地)를 찾아서

만 가지 덕을 갖춘 곳에서 선(禪)을 이룬 사람

작성일 : 2022-03-14 10:58 수정일 : 2022-03-14 13:13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산에 들면 산의 품에 안긴다.

산의 품은 어머니처럼 따스하고 아버지처럼 덕스럽다.

그러므로 산에 오르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없다.

 

그 산이 덕(德)까지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니고 만 가지쯤 가지고 있다면?

 

그런 산이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과 상관면 마치리에 걸쳐 있는 만덕산이 바로 그 산이다. 만덕산(萬德山)은 너무 커서 넘치거나 너무 작아서 모자라지 않는 산악인에게나 보통 사람들에게도 딱 맞는 아담한 산이다.

 

이른 봄 산행은 힘이 든다.

아직은 날씨가 차갑고 바람이 불어서 옷을 가볍게 입을 수도 없고 곳곳에 눈 녹은 미끄러운 곳이 길을 막는다.

이럴 때 동행해도 좋을 사람이 ‘발로 뛰는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이다. 더욱이나 만덕산 초선지를 찾아가는 데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만덕산 초선지와 3대 교주인 대산 김대거 종사의 생가를 묶어서 같이 탐방해야 한다고.

 

만덕산에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석가모니가 히말라야 깊은 산속에서 도를 깨우쳤듯이 이곳에 와서 도를 닦아 세상을 깨우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을 교화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사람이 있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다.

그는 1916년 전라북도 익산시에 총본부를 두고 교명을 원불교라 한 후 우주 근본 원리인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았다.

그는 그동안 불교에서 행하던 시주나 동냥을 없앴다. 그리고 불상까지 없앴다. 오로지 근본 원리인 일원상() 하나를 향했다.

 

원불교는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 슬로건을 내걸고 신앙과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의 세계를 실현하고자 한다.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며 생활 속의 불교를 내세웠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저축운동과 간척사업 등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자립정신을 키워나갔다.

1918년에 간척사업을 일으키고 과수원과 농축장과 양잠과 한약방 등을 경영하며 교단을 세울 수 있는 경제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원불교는 현재 전라북도 익산의 중앙 총부에서 교단을 총괄한다. 원광대학교를 비롯한 각종 교육기관이 있으며 국내에 14개 교구에 500여 교당이 있다. 해외에도 미국, 캐나다, 독일, 중국, 일본 등에 5개 교구와 50여 개의 교당이 있다.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자리 잡고 있는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이 그의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선을 행하던 초선지가 만덕산에 있는 것이다.

 

만덕산 초선지를 찾아가는데 힘을 들이지 않고 쉽게 간다면 수행자의 마음이 아닐 것이다. 가파른 산길이기는 하지만 시멘트 포장을 해놓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천 선생은 스틱을 두 개나 짚어가며 아픈 다리로 나를 안내한다. 나에게 취재거리를 제공하고 글감을 주는 일을 하나의 즐거움과 보람으로 여기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한발 한발 올라가다 보면 곳곳에 정각정행(正覺正行), 지은보은(知恩報恩) 등 마음 수련에 필요한 문구들이 적혀 있다. 조금 넓은 곳에는 ‘야단법석’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다. 야단법석이란 야외 넓은 곳에서 대중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는 곳을 말한다.

가다 보니 웬 자동차 한 대가 길가에 세워져 있다. 이곳까지 웬 차일까?

 

초선지에 이르니 원불당이 먼저 반긴다. 원불당을 지나면 높다란 절벽 한가운데 일원상()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제법 넓은 터가 있다. 이곳이 바로 ‘원불교 성적 제11호’인 만덕산 초선지(初禪地)다.

 

 

원불교를 개교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제자들과 처음으로 선회(禪會)를 열었던 만덕암 터다.

대종사는 초선회를 열기 전에 정산 송규 종사를 진안으로 보내어 만덕산 미륵사에서 삼타원 최도화를 만나게 하고 최도화의 주선으로 만덕암에 와서 3개월간 적공하며 숙연(宿緣)들을 만났다.

 

이곳은 원기 9년인 1924년 5월에 12제자들과 함께 한 달간 첫 선회를 연 곳이다. 이것이 초선지라 부르게 된 사유다. 이때의 12제자 가운데는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 종사와 3대 종법사 대산 김대거 종사도 있다.

 

본래 이 자리에 서 있던 만덕암은 산 아랫마을인 좌포 사는 김씨 집안의 제당(祭堂)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다. 그 후 원불교에서 옆에 원불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만덕이라 참 좋다”

제법 넓은 판에 쓰여 있는 글을 보면 대종사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가 원기(원불교 원력) 7년 음력 12월에 사산 오창건과 주산 송도성을 대동하고 만덕산 만덕암에서 첫 번째 행기하여 3개월 적공할 때 이렇게 말했다.

“만덕이라 참 좋은 이름이요.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불성이 서린 듯합니다. 신심이 목석에까지 이르렀거늘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리오. 이렇게 앉아 있기만 해도 선이 될 것 같습니다. 선방을 차리면 필시 많은 영험이 있을 것입니다. 만덕산은 지나가는 걸음으로 들르는 곳이 아니라 그대들과 더불어 세세생생 인연을 맺을 곳이며 많은 부처가 나올 곳이요. 곳곳이 부처이며 일마다 불공이니 선방을 차린다 해도 자리를 고를 필요가 없을 것 같소.”

 

또한 이곳 초선지는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2대 종법사 정산 송규 종사와 3대 종법사 대산 김대거 종사가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천 선생님이 다리가 상당히 아픈 것 같다. 힘들게 내려오다가 자동차가 있는 곳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었는데 저 아래에서 마실길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띈다.

 

천 선생이 소리를 친다.

“일 하시느라 애쓰십니다. 이곳 초선지를 보고 내려가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내려가기가 힘듭니다. 좌포의 김대거 종사님 사택도 가봐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저 아래 주차장까지만 좀 태워다 주고 와서 일을 하시면 어떨 런지요?”

그러자 잠시 후 그가 올라왔다. 그리고 우리를 아래 주차장까지 태워다 준다. 아래 연수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란다. 초선지를 보러 온 손님이요, 김대거 종사님 생가까지 보고 간다니 오히려 고맙단다.

우리나라 곳곳을 발품을 팔며 걸어 다녔던 천 선생의 임기응변의 대처 능력이 돋보인다. 어디에다 내던져 놓아도 밥을 굶지는 않을 사람 같아 보인다.

‘발로 뛰는 재야 인문 사학자’라는 칭호를 얻기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이력이 빛을 내는 만덕산 초선지 탐방이었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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