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내 한 복판에 있는 전주옥 터

한국 천주교 역사에 길이 빛날 동정부부 순교지

작성일 : 2022-03-17 05:10 수정일 : 2022-03-18 08:50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이곳을 아시나요?

전주의 한복판인 경원동에 있는 한국전통문화전당.

전주시 완산구 현무 1길 20번지 터다.

이곳이 조선시대 전주부의 전주옥 자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더욱이나 이곳이 한국 천주교 역사에 길이 빛날 동정부부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를 비롯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옥에 갇혀 있다가 옥사를 한 순교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전북은 중요한 지역이다. 초창기 천주교 전파 활동이 전북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많은 순교자를 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그동안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비현실적인 주자학에 대한 반발과 중국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온 주문진 신부에 의해 전파가 시작되었으며 개혁을 도모했던 정조의 관대한 정책에 힘입어 급속히 퍼져 나갔다.

그러나 정조가 죽자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나이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섭정을 하게 된 정순황후는 순조 1년인 1801년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고 천주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신유박해다.

 

신유박해로 인해 천주교인들이 100여 명이 처형을 당했고 400여 명이 유배를 당했다. 그때에 실학자였던 정약용, 정약전은 유배를 당했으며 정약종, 이승훈, 권철신, 이가환 등은 처형을 당했다.

이때부터 전주옥에 천주교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주옥이 있었던 한국전통문화전당 건물 동쪽 작은 정원에 안내판 하나가 서 있다. 얼핏 스쳐 지나가면 눈에 띄지도 않을 곳에 서 있는 안내판이다.

거기 안내판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천주교인 탄압이 시작된 신유박해 때부터 기해박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전주옥에서 순교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 번 잡혀 들어가면 온전히 나오는 사람이 드물다. 무슨 죄명이든 뒤집어쓰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포도청에 끌려가거나 옥에 갇히면 그길로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든 죄를 뒤집어 씌우기 때문이다.

 

신유박해 사건이 일어났던 1801년에 동정부부로 이름난 유중철(1775~1801-요한)과 그의 동생인 유문석(1784~1801-요한)이 10월 9일에 옥중 교살되었으며, 다음 해에는 유충철의 부인인 이순이(1782~1802-루갈다)가 전주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1827년에 있었던 정해박해 때에는 240여 명이 넘는 천주교인들이 전주옥에 감금되어 문초를 받았다. 이때에 이순이 동생 이경언(1792~1827-바오로)도 이곳에서 옥사했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김조이(1780~1839-아나스타시아), 홍봉주(토마스)의 아내 심조이(1813~1839-바르바라)가 옥살이 생활 중 받은 고문과 질병으로 옥사하였다.

이때에 한국 천주교 순교 역사상 가장 나이가 어린 이봉금(1828~1839)이 11살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를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이들 가운데 1827년 정해박해 때 잡혀 들어와 12년간이나 옥살이를 하다가 순교한 이들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천주교 박해는 비단 종교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새롭게 밀려오는 개화의 물결을 막기 위하여 진보세력들을 추출하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

 

전주의 동남쪽에 있는 치명자산에는 동정부부 유중철과 이순이의 순교를 기리는 십자가가 우뚝 서 있다. 치명자산(致命者山)이라는 이름 자체가 순교를 나타낸다. 

이윤하의 장녀로 태어난 이순이 루갈다는 14세 때에 중국에서 온 주문모 신부에게 첫 영성 세례를 받고 동정을 지킬 것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여자가 동정을 지키기 위하여 시집을 가지 않고 혼자 산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주문모 신부는 이순이 루갈다의 동정을 지켜주기 위하여 동정을 바라던 유항검의 장남인 유중철 요한을 주선하여 형식적인 혼인을 주선해 주었다. 이들은 혼인을 한 부부였으나 끝까지 동정을 지켜 동정부부로 이름을 남겼다.

 

한국 초창기의 기독교인들은 죽음으로 신앙을 지켜온 순교자들이었다. 행여 신앙생활을 하면서 타락의 유혹을 받거나 나태해지거든 이들의 목숨을 걸고 피로써 지켜온 신앙을 생각해 보면서 마음을 다잡아 볼 일이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에서 한옥마을 끝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전통문화전당의 뒤뜰은 이렇게 아프고 쓰린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며 지금은 한복을 예쁘게 차려 입고 한국전통문화전당의 뜰을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은 초창기 천주교인들이 시퍼런 칼을 든 망나니들이 기다리고 있는 형장인 남문 밖 초록바위까지 끌려갔던 한 맺힌 피의 길이었던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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