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남아 있는 100년도 더 된 종각
현재 정류장 이름으로 남아 있는 전주성의 동서남북은 그다지 큰 구역은 아니다. 그중 서문이 있고 서문에서 조금 외곽으로 나가면 전주천변에 전주서문교회가 있다.
전주서문교회에 들어서면 “100주년 기념관”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교회건물이 눈에 띈다. 교회를 개교한 지가 100년이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문교회에는 다른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낡은 종탑이 하나 서 있다. 한국식으로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종탑이다.
이 종탑이 미국에서 만들어져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제물포항을 거쳐 전주까지 온 미국 선교사가 주문하여 받은 종을 매달아 두었던 종탑이다. 종을 기증한 선교사는 물론 이 교회와 관련이 깊은 사람이다.
이 종은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직경이 90cm에 이르는 큰 종이었다. 종소리가 맑고 은은하였는데 20리 밖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지금부터 100년도 훨씬 지난 1908년 12월에 세어진 이 종각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가난과 풍토병으로 어린 아이들을 셋이나 갓난아기 때에 잃어야 했던 미국의 윌리암 전킨(한국명-전위렴) 선교사의 부인인 메리 레이번(한국명 전마리아) 선교사가 남편이 몸담았던 서문교회에 기증한 것이다.
윌리엄 전킨은 미국 남장로교회의 7인의 선발대의 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군산으로 가서 선교활동을 벌였다. 그는 군산영명학교와 멜볼딘 여학교를 세워 군산선교의 아버지로 불릴만큼 정성을 다한 사람이었다.
전주로 와서 1904년부터 서문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재직하였다. 그러다가 폐병이 발병하여 1908년에 43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그의 부인 메리 레이번은 기전여학교 초대 교장을 역임했으며 남편의 선교를 기념하기 위해 교회 종을 미국에 제작 이뢰하여 서문교회에 기증하였다.
전주서문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에 속한 개신교 교회로서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다.
지금부터 128년 전인 1893년 미국 남장로교회 레리놀즈 선교사의 파송을 받은 정해원(鄭海元)이 설립한 교회다.

전라북도 지역으로 파견된 선교사의 대부분이 미국 남장로회 소속인데 이는 1893년 선교지 분할협정에 따라 호남지방인 전라도와 충청도가 미 남장로회 선교 지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호남에는 동학란이 일어났던 지역으로 인심이 흉흉했고 선교사들이 지역 실정에도 어두운 때라 미 남장로회 선교사 레이놀즈의 어학선생이던 정해원을 파견한 것이다. 정해원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민심을 살피면서 장터 전도를 하였다.
1897년 7월 17일에 드디어 김내연, 김창국 남자 2명과 여자 강 씨, 임 씨, 김 씨 3명의 여자에게 레이놀즈 목사의 집례로 세례를 주었다.
그해 9월에는 해리슨 선교사가 거처하고 있는 방을 넓히고 개수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신도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905년 9월, 예배당을 서문 밖 현 위치로 옮겨 780평의 대지에 건평 50평의 벽돌 기와지붕의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그리고 1908년에는 김필수 집사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가 조직되기도 하여 교회의 틀을 완성했다.
1920년에는 여자야학회를 열었고 전주유치원과 숭덕성경학교 등을 개설하였다. 이때에 활동한 사람 중 방애인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는 190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모두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신앙심이 두터웠다.
그가 전주에 오게 된 것은 기전여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3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정신적 공허감과 신앙적 갈등으로 전주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신앙으로 무장한 그는 전주에 와서 기전신성회를 조직하여 전주 시내에서 전도활동을 펴고 거리에서 만난 걸인과 고아와 환자들을 보살펴 주었으며 한센병에 걸린 사람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해주어 ‘거리의 성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당시 서문교회에는 고아원이 있었는데 방애인은 담임목사 배은희와 기전여학교 교사들과 함께 고아원 설립기금 모금운동에 나서 서문교회에 인접한 곳에 개인 집을 사서 고아원을 개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1933년 9월, 2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아 안타까움 속에서 장례식이 서문교회에서 엄수되었다. 그의 묘소는 효자동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1999년 완주군 비봉면 ‘전주서문교회 묘지’로 이장되었다.
서문교회 예배당 건물은 몇 차례의 개축을 하다가 교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92년에 지하 1층, 지상 5층의 연건평 705평의 100주년 기념관을 완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현재 서문교회에 매달려 있는 종은 당시의 종이 아니고 해방 후 비슷한 것으로 대체시켜 놓은 종이다. 진짜 종은 일제강점기 때에 전쟁물자로 공출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