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신시가지와 구도심을 가르고 있는 화산의 진북터널 바로 옆 벼랑에 제비집처럼 딱 붙어 있는 진북동의 진북사(鎭北寺)는 터도 좁고 규모는 작아도 오랫동안 전주 북쪽을 지켜온 수호신 같은 존재다.
성을 쌓아 지역을 수호했던 옛날의 전주는 항상 북쪽이 문제였다. 북쪽이 터져 있어 전주의 기운이 그곳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했고 적이 쳐들어오면 북쪽을 방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주를 다스리던 관료들이 자나 깨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덕진에 연못을 만들기도 했고 숲정이에 나무를 심기도 했다. 후백제의 견훤왕은 거북을 세워 북쪽을 지키게 하기도 했다.
진북사도 그러한 의미로 전주의 북쪽을 지키기 위하여 북고사라 했다.
진북사(鎭北寺)의 진(鎭)은 진압하다, 누르다, 누르고 있는 물건을 뜻하는 한자다. 북고사(北固寺)의 고(固)도 방비하다, 수비하다, 단단하게 하다는 뜻이 있다. 북쪽을 잘 지키고 다스리기 위한 노력의 일원으로 보여진다.
전주에는 전주를 지키는 네 개의 절이 있었다. 동쪽은 승암산 중턱에 있는 동고사, 서쪽은 황방산에 있는 서고사, 남쪽은 남고산성에 있는 남고사, 그리고 북쪽은 화산의 줄기인 호암산에 있는 북고사(北固寺)다.
북고사였던 진북사는 완산칠봉 줄기인 용두봉에서부터 용의 기운을 받아 화산의 끝부분인 유연대(油然臺)라고 부르는 도드라진 곳으로 속칭 부엉이바위에 있는 절이다. 이 근방을 어은골, 또는 호랑이 아가리터라고도 부르는 명당자리다. 어은(魚隱)골이란 물고기들이 은둔하는 깊은 골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이곳까지 서해안에서 고기를 싣고 나룻배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진북사(鎭北寺)는 신라 말기 도선대사가 창건하여 북고사라 하였는데 조선 철종 7년인 1856년에 관찰사 이서구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 부근에 나무를 심고 이름을 진북사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진북사에는 현재 극락전과 미륵전, 산신각 등이 남아 있고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석조 미륵불상이 남아 있다.
이 중 석조 미륵불상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절 부근에 살던 한 노인의 꿈에 미륵이 나타나 내가 지금 전주천변에 처박혀 있어 매우 답답하고 괴로우니 나를 편안한 곳으로 옮겨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다음 날 노파가 나룻배를 타고 전주천변 늪을 뒤져 흙속에 파묻혀 있는 불상을 찾아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신도들이 미륵전을 짓고 미륵불을 남향으로 세웠는데 꿈에 일을 했던 일꾼에게 미륵이 나타나 동향으로 옮겨달라고 했다고 한다. 다음 날 일꾼들이 무거운 미륵을 옮기려고 손을 대자 미륵이 저절로 동쪽을 향하여 옮겨졌다는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벼랑에 세워져 자리가 없어서인지 대웅전에 진북사라는 이름과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래도 산신각은 빼놓지 않고 세워져 있다.

그런데 무주의 적상산에 있는 안국사에 진북사 그림이 있는데 주변이 복사꽃으로 덮여 있고 20여 채의 부속 건물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작은 절이 아닌 큰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위치로 봐서는 그렇게 넓은 터가 없는데 전에는 그 일대 낮은 곳까지 모두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
진북사는 전주의 도심에서 신시가지로 나가는 진북터널 입구 바로 옆에 있다. 찾기도 쉽고 역사도 깊으니 한 번쯤 둘러볼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