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오목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천하를 꿈꾸던 자리

작성일 : 2022-04-09 22:25 수정일 : 2022-04-11 09:29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주 한옥마을을 한눈에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그곳이 바로 오목대다. 오목대는 한옥마을을 바로 코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요충지.

 

전주 한옥마을에서 바라보면 동남쪽에 작은 동산이 하나 있다.

작은 동산이지만 결코 작은 산이 아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살았던 곳이요 황산벌에서 왜구 아지발도를 죽이고 왜군을 크게 무찌른 후 이곳에서 승리의 잔치를 벌였던 곳이다. 그때에 천하를 움켜쥘 거대한 꿈을 드러내기도 했던 곳이다.

동행했던 정몽주가 이성계의 흑심을 눈치 채고 남고산성으로 말을 몰아 고려가 기울어져 가고 있음을 한탄하였다고 한다.

 

그때 이성계가 읊은 시가 중국의 한나라 시조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大風歌)였다. 한 고조 유방은 고향을 지나가다가 고향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면서 대풍가를 부른 것인데 이성계가 이 대풍가를 부른 것이다.

 

대풍기혜운비양(大風起兮雲飛楊)

위가해내혜귀고향(威加海內兮歸故鄕)

안득맹사혜수사방(安得猛士兮守四坊)

 

큰 바람 일고 구름은 높이 날아가서

위풍을 널리 떨치며 고향에 돌아왔네

내 어찌 용맹한 인재를 얻어 사방을 수호하지 않으리

 

이때 이성계의 종사관으로 함께 왔던 정몽주는 대풍가를 듣고 이성계의 야심을 눈치 채고 고려가 기울어져 가고 있음을 생각하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말을 달려 남고산성에 이르러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시(憂國詩)를 지었는데 지금 남고산성 만경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오목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로 고려말 우왕 6년에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전주에 들려 조상인 목조가 살던 오목대에 들려 승전을 자축하던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이성계는 대풍가를 읊음으로써 정권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곳은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가 살았던 이목대와 붙어 있는 작은 동산인데 일제 강점기 때에 중간을 잘라내어 기찻길을 내는 바람에 두 도막이 나고 말았다. 지금은 육교로 이어져 있다.

이목대 아래에는 고종황제의 친필로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라 새긴 비가 비각 속에 서 있다.

 

목조는 이곳에서 어려서부터 진법놀이를 하면서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곳에서 살았다. 이러한 내용은 “용비어천가”에도 언급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조는 당시의 전주부사와의 불화로 이곳에서 살지 못하고 식솔을 거느리고 함경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대로 전주에서만 살았더라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위기는 사람을 단련하고 기회를 제공한다. 어려운 일을 만났다고 결코 낙심하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전주 이 씨 종가에서는 이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한다.

 

현재 오목대는 전주 한옥마을의 중요한 관광코스가 되어 있다. 오목대에 오르면 한옥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옥마을에서 오목대를 오르는 길은 선비의 길을 따라 오르는 게 좋다. 청사초롱이 매달려 있는 선비의 길을 걸어서 계단 몇 개를 오르다 보면 어느새 오목대 정상에 오른다.

 

 

이곳 중앙에는 대한제국 광무 4년인 1900년에 세운 비가 있는데 이 비가 고종황제가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비(太祖高皇帝駐蹕遺址)”가 비각 안에 서 있다. 비에 새겨진 내용은 태조가 잠시 머물다 간 곳이라는 뜻이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한옥마을이 다 보인다.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시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위치해 있는 한옥 집단지로써 한옥이 무려 735채나 보존되어 온 지역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한옥만 보여주는 다른 한옥마을과는 다르게 다양한 옛 전통을 보고 경험하고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지역들이 한적한 시골에 있는데 전주 한옥마을은 도시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주에는 지금부터 1만 5천여 년 무렵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지금의 자만동을 중심으로 오목대 주변의 산 아래부터 거주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신라 문무완 때인 665년에 완산주가 설치되면서 주거지가 지금의 전주인 평지로 옮겨온 듯하다.

 

전주 한옥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05년 을시조약이 체결된 이후 1911년부터 전주성이 철거된 이후에 일본인들이 성안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과는 따로 한옥을 짓고 살기 시작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한옥마을인 것이다.

 

한옥마을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문화 시설들과 어울려 있는데 경기전과 전주향교, 남문성당과 남부시장, 그리고 오목대가 여기에 포함된다.

현재 전주 한옥마을은 전국 관광지 중 첫째가는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다.

 

오목대는 필자와도 인연이 깊다.

이곳은 1960년대 초까지도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식목일에 학교에서 단체로 나무를 심었던 곳이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백일장을 열었는데 산문부 장원을 하면서 시인 신석정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전주교대 재학시절 오목대 남쪽 산비탈에 있는 집에서 동생과 함께 자취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오르내리던 언덕이었다. 그때는 그 근방의 아이들이 새까맣게 몰려와서 오목대 비탈길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도 오목대는 전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충지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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