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 공원에 가보았나요?

살던 집이 방죽이 되어 버린 시대의 풍운아

작성일 : 2022-04-17 22:58 수정일 : 2022-04-18 09:01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주에서 남원을 향하여 달리는 국도가 춘향로다. 장장 150리 길이다.

전주를 벗어나 상관에 이르기 전에 왼쪽으로 방향을 돌려 산 아래에 이르면 파묘라는 곳에 이른다. 그 옆의 볼록한 산봉우리를 파묘봉이라 부른다.

그 아래 판판한 곳에 낯선 공원 하나가 있다. 이름하여 ‘정여립 공원’이라 부른다.

 

진안을 가기 위하여 춘향로를 달리던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이 갑자기 춘향로를 벗어나 상관으로 들어간다. 잠시 보고 갈 데가 있다는 것이다. 신리 입구로 들어서서 금방 좌회전하여 산 밑에서 차가 멈춘다.

그곳이 바로 정여립 공원이란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사람들은 없다. 한적하다. 그러나 이곳은 엄숙함이 감돈다.

정여립 공원에 이르면 손을 들고 서 있는 거인과 맞닥뜨린다. 그런데 몸통은 뻥 뚫려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쓰여 있는 글자가 예사롭지 않다. 있다. ‘대동 세상’이다. 이 조각품은 보는 방향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 그냥 바라보는 세상하고 뚫린 조각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정여립의 몸을 통해서 바라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그 세상이 바로 대동 세상이다.  

그 둘레에 정여립에 대한 해설판이 여러 개 서 있다. 그리고 정여립이 사용하던 우물도 있고 대동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걱정하며 의견을 나누었던 정자도 있다. 

 

 

그 거인 앞에 서본다.

그리고 묻는다.

정여립, 그대는 정말 모반을 했는가?  한양으로 밀고 들어가 조정을 뒤집어엎고 세상을 바꾸고자 했는가? 그대를 향하여 모여든 사람들을 어떻게 사용하려 했는가?

그리고 그대가 정말로 진안 죽도로 도망가서 거기에서 자결을 했는가? 아니면 잡혀서 살해당했는가?

하긴 예나 지금이나 누명을 쓰고 잡혀 들어가면 누구 하나 성해서 돌아온 자가 없다. 어떻게든지 죄명을 뒤집어 씌워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그대도 알았으리라.

한 가지는 몰랐으리라. 그대로 인하여 동인그룹의 아까운 사람들이 천여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심지어는 전주의 남문 밖에서 바람이 불어 먼지가 눈에 들어가 눈물을 닦다가 정여립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트집 잡아 처형까지 당했다는 것을 정여립은 몰랐으리라.

 

역적 모반이라는 누명을 쓰고 세상을 등지기까지 조선의 천재로 군립하였던 정여립이었다. 세상만 잘 만났으면 대동 세상을 이루어 온 백성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 용어 가운데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도 같다. 특히 정치판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도싱하다. 어떻게 하든지 정권을 잡아야 하고 정권에 붙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그래서 정치란 더러운 것이라 한다.

 

정여립 공원에 와보면 이곳에서 살았던 한 거인의 큰 뜻이 벼락을 만나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인생무상을 볼 수 있다.

 

정여립!

그는 풍운아다. 풍운아들은 시대를 역행한다.

우수한 두뇌와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풀어먹지 못하고 오히려 역적으로 몰려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있다.

또한 시대의 영웅으로 성장할 천재를 몰라보고 위험한 존재로 여겨 죽게 해 버린 전설 속의 아까운 목숨들도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정여립이다.

전주에 사는 정여립을 고발한 사람이 멀리 황해도에 살고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고발장을 가지고 천여 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던 사건이 바로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불리는 기축 사화다.

 

기축 사화는 기축년(己丑년(年))인 1589년 10월에 정여립이 모반을 도모하였다 하여 그 후 3년에 걸쳐 관련된 자 1,000여 명을 처형시킨 전대미문의 모함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도 엉뚱하게 전주에 살고 있는 정여립을 황해도 관찰사 한준과 재령 군수 박충간, 안악 군수 이축, 신천 군수 한응인 등이 고발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라도에 있던 관찰사와 군수들은 왜 몰랐을까? 정여립이 정말 모반을 꾀했다면 전라도에 있는 관찰사와 군수들이 먼저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황해도에 있는 군수들이 고발을 한 것이다.

이것은 이율곡의 죽음으로 수세에 몰린 서인들의 모함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사실로 못을 박고 정여립과 친분이 있는 동인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처형을 한 것이다.

그 앞잡이가 바로 정철이다. 혹자는 정철이 죄인을 치죄할 때 의정대신 가운데 임시로 뽑아서 임명하던 위관이 되면서 자기의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조작했다고도 한다. 정철은 국문학사에서는 내로라는 문사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추앙받지 못할 악인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4번의 사화가 있었는데 나머지 3번의 사화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모두 500명인데 비하여 기축 사회는 1,0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것을 보면 정철의 악행을 짐작할 수 있다.

기축 사화가 지나쳤던 또 한 가지는 임진왜란의 주역이었던 김시민, 이억기, 신립, 이순신 등의 장수들을 이끌고 이탕개의 난을 평정하였던 우의정 정언신을 정여립과 9촌이라는 이유만으로 처형을 시킨 것이다. 심지어 서산대사와 사명당까지도 잡아다가 조사를 할 정도였다.

어찌 보면 얼마 전 검찰이 조국을 수사할 때보다 더 치열했던 것 같다.

 

정여립은 전주 부근의 완주군 상관면 월암 마을에서 태어나 21세에 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2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수찬에 이르렀던 영리하고 똑똑한 인재였다.

스승인 이이가 호남에서 학문하는 사람 중에서 정여립이 최고라 하였고 이발도 당대 제일 인물이라 하였으며 전주부윤 남언경은 정공은 학문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재주도 다른 사람이 따르지 못할 정도라 하였다.

 

정여립은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으며 그가 주장했던 대동세상은 천하는 누구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공공의 것이기에 주인이 없으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자유와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대동 세상이었다. 그는 모두가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신분에 관계없이 학문을 나누며 무술을 연마하는 대동계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다.

그가 꿈꾸는 대동 세상은 허균이 주장하는 천하에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라는 호민론(豪民論)과도 상통한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대동 세상은 동학혁명으로 이어져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으로 이어지며 많은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진다.

 

이 사건 이후에 전라도가 모반의 땅이 되고 말았으며 핍박받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기축 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시험에서 생원과 진사 시험 합격률을 보면 서울이 1위이고 전주가 2위였으며 나주가 3위였다. 그런데 기축옥사 이후 전주는 10위로 밀려나고 나주도 11위로 밀려났다.

결국 벼슬길이 막히기 시작한 것이다.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자 했던 홍익인간과 맞먹는 애민정신의 소유자였던 정여립이 펼치고자 했던 대동 세상은 이렇게 무산되고 정여립은 그렇게 엄청난 사건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가고 정여립 공원만 쓸쓸하게 남아 있다.

 

 

내 욕심보다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일해 보고자 하는 사람은 정여립 공원으로 가서 정여립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볼 일이다.

그보다 먼저 자신을 변화시키고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정여립 공원에 가서 정여립의 뚫린 몸을 통하여 자신을 바라볼 일이다.

대동 세상은 정여립만이 꿈꾸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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