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의 성지 만덕산에서 초선지를 둘러보고 내려온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서두른다. 그곳이 바로 원불교 3대 종법사인 김대거 생가다.
그의 생가는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 있다. 집으로 들어서는 대문간 기둥에 "대산 김대거 종사 탄생지"라고 안내 글이 써 있다.
김대거의 생가에는 몇 채의 집과 터가 남아 있고 요소요소에 안내판이 서 있다.
원불교 3대 종사였던 대산 김대거는 원기 전 2년인 1914년 4월 11일에 부친 김인호와 모친 안경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기 9년인 1924년 11세에 만덕산 만덕암 초선지에서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인연을 맺었다. 원기 14년인 16세에 출가하여 소태산 대종사를 보필하였으며 원기 47년인 1962년에 정산 송규 종사의 뒤를 이어 3대 종법사로 33년 간 원불교 교단을 이끌었다.
이 집은 김대거 종사가 태어난 집인데 그가 종사가 되어 원불교 익산 총부로 옮겨가자 아우 대설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집이다. 그 후 대설의 처 양보훈이 살다가 원불교 교단에 희사하였다.
생가 본채는 5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인데 한 칸은 부엌이고 나머지 네 칸은 방이다. 방 앞에는 넓은 마루가 있다. 원기 98년인 2013년 종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본채를 보수하였다
옛 사랑채가 있었던 자리에는 안내판이 따로 서 있는데 옛 사랑채는 중앙에 대문이 있고 좌우측으로 1칸씩 모두 3칸짜리 건물이었는데 1칸은 사랑방이고 또 한 칸은 마구간이었다고 한다. 문간에 딸린 집이라 하여 문간채라 불렀는데 지금은 옛 건물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건물을 지어 종사의 생가 관리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뒤뜰에는 대산 종사와 가족들이 기도를 올렸던 거북바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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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터에는 본래 5칸의 집이 있던 곳이다. 우측 두 칸은 머슴들이 살던 방인데 후에 마을 서당으로 쓰였고 좌측에는 광 두 칸과 돼지우리에 측간이 딸려 있었다.
생가 아래채 터는 7칸 집이 있었던 곳이다. 대산 종사의 조모 노덕송옥과 고모가 살았고 원기 15년인 1930년에는 조모인 노덕송옥이 교무를 초청하여 법회를 보기 시작한 곳이다. 그 후 원기 23년인 1938년에 대산 종사의 외조모 윤채운과 부친 김인오가 가옥과 유지답을 희사하여 현재 좌포 교당이 설립되어 있다.
현재 대산 김대거 생가는 진안군 향토문화유산 유형 제19호로 지정이 되어 보호하고 있다.

대산 김대거는 종사로 재직하는 동안 “세계 속의 원불교”를 주창하며, 국내외에 수련원을 지어 사람 농사에 힘을 쏟아 원불교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 각국에 알리는 일에 힘썼다.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을 만나서 세계 공동시장 개척, U.R(United Religions), 심전계방(心田啓發) 등 세계 평화 3대 제언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진리도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를” 등을 주장하였다.
만덕산과 좌포에서 원불교와 인연을 맺었던 그는 49세에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종법사가 되어 33년 동안 재직했는데 소탈하고 따스한 인품 속에서 품어 나오는 법문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원불교로 유입하였으며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는데 일생을 바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