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누린 영화, 죽어서는 욕이 된 사람

기린봉에 있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묘

작성일 : 2022-04-23 08:52 수정일 : 2022-04-23 10:46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주의 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기린봉

이 산은 전설 속에 나오는 신비한 동물인 기린을 본 따 지은 이름이다.

전주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산이다.

 

그 기린봉을 오르는 길은 동서남북 여러 곳에 있다. 그 중 서쪽에서 올라가는 길 가운데 기린봉 아파트 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산마루에 이르면 마당재에서 올라오는 길과 선린사에서 오는 길이 만나 함께 기린봉 정상을 향해 오르는 곳이다.

 

기린봉 아파트를 지나 조금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제법 큰 무덤을 만나게 된다. 높다란 비석과 일본식 제단으로 꾸며진 행세 꽤나 했을법한 무덤이다.

그런데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팻말을 볼 수 있다. 웬 팻말이 이리도 많을까?  그런데 팻말에 쓰여 있는 문구는 하나같이 무덤의 주인공을 향한 비난과 규탄과 욕설이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70년의 과오, 7만 년 가리라”

“민족의 반역자, 저승에서도 편안하면 안 돼”

“백성의 피눈물이 너를 옥죄리라”

“네가 누린 부귀영화, 국민의 눈물임을 아는가”

도대체 누구의 무덤이며 어떤 일을 했기에 이리 욕을 먹고 있을까?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낙인 찍힌 이두황의 묘에 꽂혀 있는 팻말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친일반민족 행위자 이두황”이라는 팻말이다.

그는 어떤 일을 했기에 죽은 뒤에 이토록 욕을 먹게 되었을까?

이두황은 동학 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는 1894년 11월 15일 논산 황화대 싸움에서 관군을 이끌고 동학군을 토벌하는데 앞장섰다. 논산 황화대 싸움이 끝나고 이두황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남은 도둑 천여 명이 여지없이 무너졌는데 새벽하늘에 별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길에 버려진 총과 창, 밭두렁에 버려진 시체가 눈에 걸리고 발에 채였다.”

자기의 공적을 자랑스럽게 기록한 것이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간다. 그때 관리직에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을 한 것이다. 그는 당시에 훈련대 1대대장으로 일본군과 함께 국모시해 사건에 앞장섰다. 그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이 나라 백성으로서 왜놈들이 국모를 살해하는데 앞장을 섰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1908년 전라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에 나서 호남지역 의병활동을 초토화 시키는데도 앞장섰다.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에 1910년부터 사망 시인 1916년까지 전라북도 장관(현 도지사)으로 재직하면서 일제 토지 수탈에 앞장선 대표적인 친일파인 것이다. 일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토지를 수탈하기 위하여 토지대장 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등재가 되어 있지 않은 땅은 모조리 국유지로 삼아 수탈을 했다. 논밭을 사고팔면서 문서만 주고받고 법원에 미처 등기를 내지 않았던 사람들은 논밭을 다 빼앗겼다.

 

친일파들은 외세에 빌붙어 우리나라 국민들을 괴롭히는 일에 앞장을 섰다. 그 대가로 많은 땅을 받았고 높은 벼슬을 했으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들은 일본이 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핍박 받는 쪽에서 고생을 하랴 생각했다.

 

친일파 가운데는 1940년 이후에 변질된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이 망할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마음을 바꿔먹은 것이다.

 

이두황은 그런 사람들과도 다르다. 처음부터 권력에 빌붙어 아부를 한 사람이다. 그래서 큰 소리 치며 잘 먹고 잘 살았다. 죽을 때까지도 별 고통 없이 살다가 죽었다. 그래서 묘도 기린봉 아래 만들고 묘비도 높이 세웠다.

 

그러나 사후에는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며 그를 비난하는 팻말들이 수없이 꽂히는 수난을 당하게 되었다.

 

기린봉 아파트 아래 견훤로에서 기린봉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민족문제 연구소 전북지부에서 세운 “친일 반민족 행위자 이두황 단죄비”가 있다. 여기에는 이두황의 친일 행위와 반민족 행위가 적혀 있고 거기에서부터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두황의 묘의 위치도 그려져 있다.

 

나무 가운데 주목이나 괴목은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 한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서 누린 영광이 죽어서 욕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은 나무만도 못한 사람들이다.

 

전주의 성산인 기린봉 아래 좋은 땅에 자리는 잡았지만 오는 사람 가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먹으며 수많은 비난의 글귀를 그대로 안고 있어야 하는 그는 부끄러워 자손들마저도 우리 조상이라고 나서지도 못하여 비문도 흐려져 읽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외롭고 괴로운 혼이 되어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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