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불씨를 잠재운 바위 위의 표준 되
황방산은 전주의 전설 같은 산이다.
일찍이 우리나라의 내로라는 지관이 황방산이 전주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후로 도대체 전주 중심부에서 뚝 떨어져 있는 이 산이 어떻게 전주의 중심이 될까 의심했고 지관의 통찰력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탄을 한다. 어떻게 오래 전에 혁신도시가 이곳에 들어설 줄울 알았을까 탄복한다.
황방산에는 여러 가지 숨겨진 것들이 있다. 전주의 서쪽을 지키라고 만들었던 서고사가 있고 서고산성이 있으며 여기저기 고인돌이 있다.
그 중에 한 가지로 ‘되바위’가 있다. 혹은 말[斗]바위라고도 한다. 실제의 모양은 한 되 크기인데 말이 흘러가다 보니 한 말의 크기로 커진 것이다.
되나 말은 곡식의 양을 재는 도구다. 곡식을 퍼 담아서 양을 잰다. 그리고 그 곡식을 다른 그릇이나 자루에 부어야 한다. 그런데 바위에 되를 만들어 놓았으니 어떻게 곡식을 퍼서 양을 재며 어떻게 다른 그릇에 부을 수가 있겠는가?
이럴 때는 가서 두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사람은 두 말하면 잔소리가 되는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이다.
일단은 서고사에 들렀다 가기로 했는데 마침 서고사가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어서 어수선한 데다 본래 있던 서고사 건물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려 실망만 한 아름 안고 되바위를 찾으러 나섰다.
되바위를 찾아가려면 두현 마을을 지나가야 한다. 두현(斗峴))이라는 말이 말 고개가 아닌가? 그렇다면 제대로 찾아온 것은 틀림없다.
다행히 되바위가 있는 고갯마루까지 자갈을 깔아 놓았다. 고개를 넘으면 전주 시내가 다 내다보이는 황방산 동쪽이다.
고개 위에 덩그렇게 놓여 있는 별로 크지 않은 바위 하나. 아래나 옆에서 바라보면 지극히 평범한 바위다. 바위 위에 올라서야 제대로 바위의 진가를 알 수 있다. 한 뼘 조금 더 되는 크기의 네모진 구덩이. 이것이 바로 되바위인 것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안내판을 보니 옛날 황방산에 군대가 주둔하게 되었는데 주변 백성들에게 군역 조세를 받았다.
그런데 갈수록 조세를 받아가는 되가 커지는 것이었다. 해가 갈수록 커져서 한 되가 한 말만큼 커져버렸다. 그래서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불평과 불만이 커져갔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강당사 스님이 바위를 파서 키울 수도 없고 줄일 수도 없는 표준의 되를 만들어 놓은 것이 되바위라는 것이다. 그 크기가 가로24cm, 세로 24cm, 깊이 12cm였다.
그 후 이 되바위가 한 되의 표준이 되었으며 다툼이 생겼을 때 표준으로 삼았다. 되가 흔치 않았던 옛날에는 한 되와 맞먹는 바가지를 되 대신 사용하였다. 바가지의 모양이 같지를 않고 여러 가지라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럴 때는 이곳 되바위에 와서 측정을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되바위라고 부르다가 사람에 따라서는 말바위라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그 바위가 지금까지 남아 있으니 그냥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소중한 유물이 된 것이다.
바위에 딱 한 되가 되도록 네모진 구멍을 파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극한 정성이 아니고는 양을 맞추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되바위가 말바위로 불린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혁신도시가 황방산 아래 펼쳐지면서 산비탈에서 푸성귀 가꾸어 먹던 밭들이 몇 배로 값이 뛰어 되바위가 말바위된 것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
되바위 아래 있던 땅들이 말바위 만큼 비싸진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나 퍼져 나가는 말은 아무 까닭 없이 퍼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근거 아래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황방산 아래 사는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