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동쪽의 아늑한 승암 새뜰 마을
전주를 막 벗어나는 좁은목에 들어서면 전주천 건너 전주의 명산 승암산이 보이고 그 산 아래 올망졸망 아기자기한 산동네가 보인다.
이곳이 승암 새뜰 마을이다. 이 동네에는 집도 몇 채 안 되는데 없는 것이 없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 봄이면 꽃으로 덮인 꽃동네 사이사이로 절도 있고 교회도 있고 점집도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성당도 있다. 그런가하면 동네 아래에는 전주 팔경의 으뜸으로 삼는 한벽루가 있고 향교도 있고 기차굴도 있다. 최근에는 국립 무형유산원까지 들어서서 사시사철 옛 가락이 그치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버티고 있는 큰 집이 한국불교 태고종 승암사이다. 본래 승암산이라는 이름이 스님이 고깔을 쓰고 앉아 있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승암산에는 산 중턱에 동고사가 있지만 그보다 먼저 생긴 절이 산 아래 승암사다.
승암사는 신라 헌강왕 2년인 876년에 도선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명실공이 천 년 사찰이다.
승암사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우람한 대웅보전 기둥에 쓰여 있는 부처님 말씀이다. 이를 주련이라 하는데 대부분의 절이 한자로 휘갈겨 써 놓았는데 승암사에는 한글로 쓰여 있다. 한글로 써 있으니 읽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마침 주지 스님이 외출을 위해 밖으로 나온다. 주렴이 한글로 쓰여 있어서 그냥 지나가지 않고 읽고 있노라 말하니 이것이 승암사의 특징이란다. 주렴을 한자로, 그것도 초서로 휘갈겨 써 놓으면 내용은 어디로 숨어버리고 필체만 남는다는 것이다. 옆에 서 있는 만옹 대종사 공적비도 그래서 한글로 새겼다고 한다. 그만큼 중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크신 주지스님이시다. 주지 스님이 주렴을 한 구절씩 읽어 나간다.
삼일 동안 닦은 마음 천년만년 보배 되고
한평생을 모은 재산 눈떠보면 거품일세
나의 삶은 불법 공덕 찬탄하기 위함이고
나의 삶은 이웃에게 기쁨 주기 위함이네
기쁨 속의 이 하루는 부처님의 그 하루요
광명 속의 이 세계는 부처님의 세계일세
좌선하는 이 모습은 부처님의 모습이고
염불하는 이 마음은 부처님의 마음이네

한글로 써 있다는 만옹 대종사 공적비에 가보니 큼지막한 돌비석에 한글 가로쓰기로 글이 쓰여 있다.
“거룩하도다. 만옹 대종사님의 행장이여!”
이 구절로 시작되는 공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만옹 대종사님은 1915년 을묘년에 남원 수지에서 태어나서 1927년 완주 송광사에서 운성 큰 스님을 은사로 하여 득도하였으며,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하고 대본산인 위봉사에서 대교과의 일대 수교를 수학하였다. 그 후 금강산 석두 큰 스님, 화상 등 여러 선원에서 인거를 성만하시는 가운데 대종사 법계를 품수하시었다.
만옹 대종사는 1943년 승암사 주지로 부임하여 병화로 인하여 소실된 초가삼간의 당우를 일신 중창하여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하였으며 ‘한벽선원’과 ‘승암강원’을 개설하여 우리 고장 불교계의 학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1984년 6월 6일에 다비식이 봉행되었다.
승암사에는 소중한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데 그게 바로 ‘묘법연화경’과 '금강경오가해‘다. 묘법연화경은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난 근본의 뜻을 밝힌 경전으로 조선 세종 25년에 고산 화암사에서 간행한 판본이다. 금강경오가해는 금강경의 해설서로써 명종 13년에 간행한 불서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판본이 귀하여 불교사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승암사에 소장되어 있는 불서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209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의 대웅보전은 1983년에 도광 스님이 세운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된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삼존불과 관세음보살 탱화, 산신탱화, 신중탱화 등이 보존되어 있다. 그중 신중탱화는 1958년 동고사에서 옮겨온 것이다. 뜰 앞의 범종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이다.
승암사에는 조선 중기 우리 고장에서 크게 활약했던 진묵대사가 제자 원웅과 함께 이 절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높이 솟은 승암산 아래 아늑하고 고즈넉한 작은 동네인 승암 새뜰 마을 속에 있는 승암사는 오늘도 지는 해를 받아 노을 속애서 중생의 시름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