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만경 쌀 수탈의 현장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넓은 들에서 나는 쌀은 양과 맛에서 최고의 쌀이다. 그런 쌀을 일본인들이 어찌 욕심을 내지 않겠는가?
일본이 한일합방을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김제의 질 좋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쌀을 수탈하는 정책을 썼고 빼앗은 쌀을 보관할 창고를 새로 지은 곳이 신창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새로 지은 창고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창고에 쌓아둔 쌀을 실어갈 항구가 군산이었다. 그래서 일제시대의 군산은 북적거리는 풍요의 항구였다. 그런데 신창과 군산을 가로막고 있는 강이 만경강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놓은 다리가 만경교라 불리는 ‘새창이 다리’다. 새창이 다리가 일제 강점기 때에 제일 먼저 놓은 가장 긴 다리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일본인들이 급했던 것이다.
더욱이나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침범을 못했던 땅이었다. 이순신이 남쪽 바다를 굳게 지키고 있어서 서해바다로 들어오지 못했고 진주에서는 김시민이 진주성을 굳게 지켰으며 남원에서는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내걸고 항쟁하였다. 전주로 들어오려던 왜군은 아중리 왜망실에서 관군에 패하여 자멸되고 말았다.
그 한풀이도 할 겸, 전라도 김제 만경에서 나는 좋은 쌀을 몽땅 일본으로 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새창이 다리는 김제의 쌀을 군산항으로 실어가기 위한 다리다. 우리나라 농민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던 다리다. 그 다리가 아직도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다.
아니 가볼 수가 없다.
한 사람만 쑤석거리면 된다.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
그는 마음 넉넉하게 언제 어디라도 간다고 한다. 하루 날을 잡아 스케줄까지 쪽 짜온다. 부지런히 다녀야 할 만큼 빽빽하게 짜온다. 그리고 강행군을 한다. 그와 함께 길을 나서면 한 열흘치의 기사거리가 넉넉하다. 그 가운데 새창이 다리가 있다.
새창이 다리 입구에 들어섰다.
다리 입구에 아치를 만들어 “새창이 다리”라고 써놓았는데 다리 난간에 새겨진 다리 이름은 글자가 마모되어 잘 보이지도 않는 “만경교”라고 쓰여 있다. 그 옆에 ‘풍요의 강, 만경강 이야기’라는 입간판이 하나 서 있다.
커다란 돌 화분에 나무를 심어 차가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새창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유유자적 편한 마음으로 한가하게 걷고 있지만 그 예날 이 다리를 건너가던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짐작해 본다.
애써서 지어놓은 쌀을 거의 다 빼앗기고 그 쌀을 지게에 지고 혹은 마차에 싣고 군산항을 향하여 이 다리를 건너가는 김제 농민들의 마음은 참으로 찹찹하고 우울했으리라.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흘러가고 다리도 비록 낡았지만 그대로 있는데 그 때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빼앗아 간 사람들이나 빼앗긴 자들이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가고 다리만 남아 있는 그 다리를 지금 후손인 내가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리 양쪽으로 김제시의 관광 안내판이 서 있다. 김제는 먹을 것만 풍부한 게 아니라 볼거리도 풍부하다.
모악산과 금산사, 심포와 망해사, 벽골제와 능제, 아리랑 문학마을, 만경강과 포구, 청운사와 부용사, 새만금 33센터 등의 관광지 명소에 대한 안내문이 줄을 서 있다.
다리를 다 건너오니 여기에는 더 많은 안내문이 서 있다.
새창이 다리 이야기, 구 만경대교 역사 이야기, 새창이 연꽃 마당 이야기 등의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중에서 구 만경대교 역사 이야기를 보면 1933년 8월 4일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하고 있다.

이 다리는 총공사비가 25만 원 들어갔으며 전라북도 김제와 옥구 구간을 잇는 신창진의 만경대교다. 총비용 25만 1,830원 8전 6리라는 거액을 들여 소화 61년 11월 10일에 기공하여 637일 만인 7월 30일에 준공되었다. 다리 길이가 420메돌, 1,386척이요 폭이 5메돌 반이라 한다.
다리가 완성되어 8월 2일에는 비가 내리는데도 관민, 주민 수백 명이 모여 축하 집회를 하였다. 준공식은 8월 20일에 성대하게 치렀다.
지금은 붕괴 위험이 있어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고 있으며 사람만 걸어서 건너가도록 허용하고 있다. 새창이 다리를 중심으로 새창이 연꽃 마당을 만들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 옆으로 새로 난 다리에는 오늘도 수많은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는데 한 때 흰옷 입은 사람들이 가득 걸어갔던 새창이 다리에는 사람 그림자는 찾아볼 길이 없고 강바람만 낡은 다리목을 휘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