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나무는 보통의 나무가 아니다. 무서운 나무이고 서러운 나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는다. 무언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달래주기 때문이다.
사실 당산나무라는 수종은 없다. 굳이 어떤 나무가 당산나무여야 한다는 기준이나 규정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 나무나 당산나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마을의 주민들과 애환을 함께 한 나무여야 한다. 마을 주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나무여야 한다. 대부분 마을이 생기면서 심어진 나무를 당산나무로 정한다. 그렇게까지는 안 되어도 마을 주민들과 친근한 나무여야 한다. 그리고 영험이 있어야 한다. 마을 주민들이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만큼 오래전부터 당산제를 지내온 마을은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당산제를 이어가고자 한다. 거기에 오래 전에 살다가 간 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당산제가 300년 동안 이어온 곳이 있다.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장기리 마을이다. 흔히 둥구나무 마을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당산나무가 있는 곳을 둥구나무 거리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에 고산현이었던 이곳은 원래 고산현 관할의 죄인들을 처형하던 사형터였다. 그러다 보니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이곳을 맴돌게 되었고 원혼이 되어 사람들을 무섭게 하였다.
또 동네 앞을 흐르는 만경강의 둑이 장마철 호우로 인하여 터지면 그로 인하여 죽은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의 영혼 역시 이곳을 맴돌았다. 그래서 그 원혼들을 달래주기 위하여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 아울러 제방을 지키는 귀신에게 둑을 잘 지켜주십사 빌게 되고 금년에도 풍년들게 해 주십사 풍년제도 겸하게 되었다.

당산제를 마치고는 힘센 사람들이 힘자랑을 하였고 씨름판이 벌어진 것이다. 이곳 장기리에서는 7월 20일에 당산제를 지내왔는데 2009년 10월 10일, 봉동이 인구 2만 명을 넘게 되어 읍으로 승격을 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2012년부터 10월 10일에 지내게 되었다.
장기리 당산제는 ‘당산 문화제’로 이름을 바꾸어 당산제전위원회가 주관하여 지낸다. 이곳 당산나무 거리에는 수령 200년이 넘는 노거수가 느티나무, 팽나무 등 8그루가 서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당산 신을 모시는 당산나무로 정하고 그 나무 아래 당산 제단을 만들어 제단 위에 음식을 진설하여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가 끝나고 벌이는 씨름은 오랜 전통을 지닌 ‘봉동 씨름’으로 다른 곳의 씨름과는 다르다. 씨름의 샅바를 잡을 때에 보통은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에서샅바를 잡는데 이곳 봉동 씨름은 선 자세에서 샅바를 잡는다. 그리고 오른 씨름을 한다. 오른 씨름이란 샅바를 왼쪽 다리에 매고 어깨를 오른 쪽으로 돌려 오른 다리에 힘을 모으는 씨름이다.
본래 우리나라 씨름은 봉동 씨름처럼 오른 씨름이었다. 그것을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서 고유한 오른 씨름을 왼 씨름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는 1931년 제2회 조선씨름대회부터 왼 씨름으로 통일을 시켜버렸다.
이곳 당산나무 거리를 비석거리라고도 부른다. 이곳에 비석이 죽 서 있다. 제방 축조에 대한 내용을 새긴 비석들이다. 조선 시대에는 9개가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7개로 줄었다. 현재는 선정비가 늘어 16개가 서 있다.
당산나무 거리 또는 비석거리는 장기리 중에서 윗부분에 해당하는 윗 장터에 있다. 이곳 상장기 마을은 윗 장터를 한자어로 바꾼 것이며 이곳에서 실시되었던 당산제와 최근에 이루어진 담장 개선사업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다.
봉동 앞을 흐르는 냇물인 봉동천을 동포천이라 부른다. 노란 황포돛배가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만경강변에 황포돛배를 바라보며 커다란 당산나무 아래에서 한가롭게 풍류를 즐겼던 옛 조상들의 향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봉동의 윗 장터가 바로 당산나무 거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