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태어난 성스러운 곳, 초남이 성지

집이 파여 방죽이 된 파가저택(破家瀦宅)

작성일 : 2022-05-16 08:16 수정일 : 2022-05-16 08:54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사람은 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죽어서는 어떤 사람으로 남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초남이 성지를 찾아갔다. 

본래 초남이 성지 탐방은 오늘 취재 나들이 계획에 없었다. 그(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가 갑자기 시간이 남으니 초남이 성지를 들렸다 가지고 하여 들른 것이다. 꼬불꼬불 전주시 덕진구 원동 마을길을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다가 다시 꼬불꼬불 찾아간 곳이다.

 

주소로 보면 완주군 이서면 초남신기길 122-1번지다. 그러나 전주-군산 산업도로가 시작되는 근방에 있는 고속도로 식물원 길로 가는 것이 좋다.

 

원동초등학교를 끼고돌아 잠시 내려가면 나타나는 곳이 초남이 성지다. 이곳은 우리나라 천주교 초창기의 신자였던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가 살던 집이다. 복자(福者)란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은 사람에 대하여 그의 신앙과 덕행을 증거 하여 공경할 만 하다고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하여 발표한 사람에 대한 존칭을 말한다. 유항검은 2014년에 복자품(福者品)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살던 집은 대역죄인의 집으로 건물은 파기되고 집터는 방죽으로 파인 채 온 가족이 모두 형장으로 끌려가거나 유배를 당하는 극형을 당하고 말았다. 지금 그의 마당은 작은 연못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거기 이렇게 쓰여 있는 돌이 하나 놓여 있다.

“유항검 생가 터, 파가저택(破家瀦澤)”

파가저택이란 나라에 큰 죄를 진 사람의 집을 헐고 연못을 파버리는 것을 말한다. 천주교를 믿는 것이 대역부도죄에 해당 되는 큰 죄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제법 큰 안내석이 하나 서 있다.

“동정부부 생가, 유중철(요한), 이순이(누갈다)”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교리당’과 ‘한국 최초의 순교자 묘소’가 있다.

‘교리당’은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동생 유관검이 천주교 박해 시대에 천주교 교리를 공부하고 가르치던 곳이다. 여러 가지 증거를 수집하여 2002년에 이곳에 교리당 건물을 세웠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 묘소’는 한국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 복자 윤지헌 프란시스코의 유해를 안치한 곳이다.

유항검의 이종 사촌동생인 윤지충과 외종 사촌 형인 권상연이 순교한 이후 유항검이 이들의 유해를 자신의 땅인 바우배미에 안장하고 백자사발지석에 이들의 인적사항을 적어 함께 묻었다.

그 후 230년이 지난 2021년 3월 11일, 묘소를 정비하던 중 이들의 유해와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 최초의 순교자 묘소가 만들어졌다.

 

복자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1756~1801)는 호남의 부자라고 할 만큼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베풀며 불편함 없이 살았다.

그러던 그가 신학문에 접하게 되고 천주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는 정조 8년인 1784년에 경기도에 있는 권철신의 집을 찾아갔다가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고 권철신의 동생인 권일신(權日身)에게 교리를 배우고 신앙을 받아들였으며 이승훈(李承薰)에게 세례를 받고, 고향에 돌아와 가족과 친척, 노비 등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된 이후 호남의 사도로 활동했고 천주교 정착에 크게 공헌했다. 그는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교리를 받아들여 실천함으로써 천주교 전파에 힘썼다.

 

정조 15년인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가 일어나 윤지충이 처형되었다.

하지만 유항검은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1795년 5월에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전주로 초청해 미사를 봉헌했고, 자신의 장남 유중철과 이윤하의 딸 이순이가 ‘동정 부부’를 서약하고 혼인하는 것을 허락했다.

 

1786년 가을에는 가성직자단(假聖職者團)의 신부로 임명받아 고향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성무 활동에 전념했으며 교회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 신주(神主)를 조상의 무덤 곁에 묻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1801년 정조가 의문사 하고, 어린 순조 임금이 즉위하면서 안동 김 씨 세도정권이 들어서자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소위 말하는 ‘오가작통법’을 적용시켜 천주교도들을 검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1801년 3월 전라감영에선 유항검을 비롯한 유관검, 윤지헌, 이우집, 김유산 등을 체포하여 서울로 압송하였다.

그들은 대역부도(大逆不道) 죄로 능지처참(陵遲處斬)과 그들의 집을 파서 소(연못)를 만드는 파가저택(破家瀦澤) 형을 받고 전주로 이송된 후 그해 10월 24일(음력 9월 17일) 현재의 전동성당 부근에서 유관검, 윤지헌, 이우집, 김유산과 함께 처형되었다.

 

유항검과 그의 동생 유관검은 대역부도죄로 육시형을 당했으며, 목이 잘려 머리를 전주 남문 누각에 매어 달아 성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도록 하였다.

그때 유항검의 가족 중 동정 부부인 큰아들 유중철(柳重哲)과 며느리 이순이(李順伊), 그리고 둘째 아들 유문석(柳文碩), 그의 부인 신희(申喜), 조카 유중성(柳重誠)이 함께 순교했다.

여섯 살이던 그의 아들 유일석(柳日碩)은 흑산도로, 세 살이던 유일문(柳日文)은 신시도로, 아홉 살이던 딸 유섬이(柳暹伊)는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유항검은 가족 7명과 함께 순교했다.

 

신앙인이라면 한 번쯤은 이곳 초남이 성지에 와서 나는 지금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자문자답해 볼 기회를 가져보았으면 한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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