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리 소리 들려오는 한벽당 정자

600년을 이어온 도민의 안식처

작성일 : 2022-05-17 09:28 수정일 : 2022-05-17 10:08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요즘은 길을 걷다 보면 머리 위로 하얀 꽃잎이 떨어진다. 길바닥에도 하얗게 꽃잎이 깔려 있다. 아카시아 꽃이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어렸을 때에 불렀던 동요가 지금도 들려온다.

 

봄이 익어가더니 어느새 여름으로 들어서나 보다. 산책하기에 딱 좋을 때다.

한벽당이 있는 전주천으로 산책을 나서 본다.

그런데 은은하게 대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한벽당이 나온다. 정자 위에서 들리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니 한벽당 옆의 작은 정자인 요월대 안에서 대피리를 불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차림도 한복 차림이다. 조선시대에 온 느낌이다.

 

한벽당(寒碧堂)은 조선시대에 지은 정자다.

전주 동쪽에 위치한 승암산에서 벋어 내려온 발산의 언덕 위에 절벽을 깎아 세운 정자다.

 

조선 태종 4년인 1404년 개국공신으로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조선 초기 문신이었던 최덕지의 부친인 월당(月塘) 최담(崔湛)이 집 근처에 지은 별장이 바로 한벽당이다.

 

한벽당은 한벽루라고 부르는데 남원의 광한루, 무주의 한풍루와 더불어 호남의 삼한으로 불리는 곳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 곳이었다.

 

한벽당 계단을 올라 정자에 오르면 별채처럼 작은 정자가 하나 더 있다. 이 정자를 요월대(邀月臺)라 부른다. 요월대에서 바라보는 풍치는 또 다른 맛을 준다.

 

누각의 규모는 정면이 3칸이요, 측면이 2칸인 팔작지붕이며 건평은 7.8평이다.

경내에는 이경전, 이경여, 이기발, 김진상 등 19명의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걸려 있다. 그러나 한벽당을 소재로 글을 남긴 사람은 수없이 많다.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들도 많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와 전주의 명필 이삼만이 만났다는 곳도 이곳으로 전해진다.

정승에 제수 되었으나 응하지 않았던 송시열 학통의 후계자 수암 권상하, 광해군 때에 인목대비 폐위를 백의 항소로 상소를 올렸던 옥담 이응희,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 땅 해남을 향해 가던 고산 윤선도 등도 이곳을 다녀갔다.

 

한벽당을 중수할 때에 쓴 중수기는 순국지사 면암 최익현이 썼다고 하며 한벽당의 서북쪽에는 참의정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여기에도 최담의 필적이 있다고 한다.

 

한벽당에 걸려 있는 편액은 돌계단 쪽의 편액은 최담의 글씨라 하고 앞면에서 보이는 편액은 강암 송성용 글씨이며 요월대의 편액은 황욱 선생의 필체라 한다. 그밖에 창암 이삼만과 금재 최병심의 흔적도 있다고 한다.

 

한벽당은 처음에는 정자를 지은 월당의 호를 따서 월당루라고 불렀으며

후에 한벽루로 불리다가 전주 관아에서 중수를 하면서 한벽당으로 명칭을 바꾸어지기도 했다.

 

한벽당에 대한 일화도 많다.

추사 김정희가 이삼만을 만나고 나서 제주도에서 유배 중 이삼만의 글씨가 머릿속에 깊이 각인이 되었다. 그가 그린 세한도는 이삼만의 글씨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추사가  유배가 끝나고 다시 전주에 들렸을 때 이삼만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비문을 지어 주었는데 현재 구이의 이삼만 묘비에 적혀 있다고 한다.

 

이삼만이 어느 날 한벽당에 들렸더니 부채 장사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서 부채 장사가 가지고 있는 부채에 일필휘지로 글을 써 놓았다. 부채 장사가 팔아야 할 부채에 낙서를 해놓았다고 화를 내자 그것을 가지고 남문거리로 나가 팔아보라 하였다. 부채는 불티나게 팔려버렸다. 놀란 부채 장사가 다시 와서 사례한다 하니 나는 한벽당의 바람을 가져갈 것이니 그만두라 하였다 한다.

 

비록 정자 아래로 기차가 다니던 철길이 뚫리고 코앞에 자동차들이 씽씽 달리는 한벽교가 놓여 풍광을 가리기는 했어도 600년을 이어온 전주 팔경의 풍채는 오늘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벽당에서 들려오는 대피리 소리와 함께 풍족하게 적셔주고 있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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