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자유로웠던 진묵대사와 성모암

성인이 태어나고 부모를 모신 곳

작성일 : 2022-05-18 06:00 수정일 : 2022-05-19 08:49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진묵대사(震黙大師)는 조선시대 명종 17년인 1562년 전라도 만경현(萬頃縣) 불거촌(佛居村)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조앙사 자리다.

그는 72년 동안 세상을 살았는데 그가 직접 쓴 글이 없다. 그런데도 전설처럼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어느 절을 가나 그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가 며칠 머물다만 가도 그가 유하였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진묵대사가 살던 시대에는 암울한 시대였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난리를 치르고 난 후여서 백성들이 지쳐 있었는데 조정에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파싸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무언가 구세주가 필요했다. 백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상으로는 백성의 우상이 되는 사람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이순신이 그랬고 정여립이 그랬다. 그래서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고 다들 몸을 사렸다. 그때에 나타난 사람이 진묵대사였다.

 

그는 불교에 귀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화에 휘말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런 것을 무서워할 사람도 아니었다. 힘들고 지친 백성들에게 그는 위로의 사람이 되었다.

지식이나 지혜가 출중한 스님이면서도 백성들과 친근한 사람으로 보였고 백성들과 같은 레벨의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는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만나면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진묵대사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여러 곳을 다니면서 아무 절이나 머물렀고 중생들과 만났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만난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들이다. 말하자면 전설을 뿌리고 다닌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1850년 초의선사가 짓고 완주 봉서사에서 간행한 진묵대사유적고(震黙大師遺蹟考)에 그에 대한 일화가 18편이 전한다. 그 외에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모아진 일화를 합하여 32편 정도가 남아 있다.

 

진묵대사는 부처의 화신이라 할 만큼 신통력을 발휘했다.

그는 불량배들과 어울려 술을 곡차라 하고 마시고 물고기를 안주로 먹었는데 물가에 변을 보면 물고기들이 다 살아났다. 누님이 곡식을 가지고 멀리 갈 때 날이 저물까 봐 해를 붙들어두기도 했다.

 

진묵대사는 중이면서도 유학에도 밝았다. 유학에서 중요시하는 부모에 대한 효도와 가족 간의 우애를 중시하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명당을 잡아 어머니를 모셨는데 그 자리가 “무자손 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라 하여 자손이 없어도 천년 동안 돌보아 주는 명당자리라 한다.

 

그곳이 바로 성모암이다.

성모암은 진묵대사의 어머니를 모신 곳이다. 이곳은 한국불교 조계종 사찰이다. 진묵대사가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모셨기 때문에 이곳 성모암에 와서 성모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성모암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는 무덤을 지킬 고시래전이 있고 극락보전은 서방 극락정토를 구현하여 전각 내 세 벽마다 개인 감실을 두고 있어 영혼의 안식처인 납골당을 안치하고 있는 듯하다.

 

한쪽에는 진묵효행 대범종을 제작하기 위한 불사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다.

성모암회주영월 대종사와 성모암 주지 묵암이 주관하여 봉행 위원들이 함께하는 진묵효행 대범종 1,500관을 제작하기 위한 일인데 참여자가 8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성모암 아래에 있는 조앙사는 진묵조사가 탄생한 곳으로 1915년 진묵조사를 흠양하기 이해 강해월화보살이 창건하였다. 진묵조사 같은 고승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불거촌(佛居村)이라 하고 산 이름을 유앙산(維仰山), 불앙산(拂仰山), 조앙산(組仰山)이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1914년에 산 이름을 주행산(舟行山)으로 바꾸어버렸다.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이 넌지시 입을 연다. 성모암과 조앙사 아이에 한 때 철조망이 쳐 있기도 해서 그걸 제거하라고 건의 했었노라고. 그래서인지 지금은 툭 터져 있어 마음마저 시원하단다. 

 

조앙사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있다. 묘법연화경은 법화경이라고도 하는데 천태종의 근본 경전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있음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묘법연화경은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 확립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삼국시대 이래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불교 경전이다. 조앙사에 소장된 묘법연화경은 영각사본, 귀신사본, 언문본으로 일제 강점기에 민족적 시련을 진묵조사 탄생 터에서 불법에 의한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의 염원이 담긴 중요한 시대적 지표로써의 가치가 크다.

 

진묵대사가 태어난 곳은 김제 조앙사인데 진묵대사의 사리는 완주군 용진읍 간중리 봉서사에 있다. 봉서사는 진묵대사가 어려서 출가한 곳이고 말년에 수행을 하다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친 곳이다.

 

그는 몸은 잠재워놓고 혼만 가지고 다니면서 자유자재로 움직였는데 그가 잠재워놓은 몸을 시기질투에 눈이 어두운 사람에 의해 살해당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안타깝고 아까운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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