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규모의 큰 절인 김제 부용사

한국 불교 미술의 거두 일섭 스님이 창건한 절

작성일 : 2022-05-19 08:02 수정일 : 2022-05-19 08:52 작성자 : 이용만 기자

 

 

 

탱화(幁畵)란 천이나 종이에 부처나 보살 또는 성현들을 그려 벽에 거는 불화(佛畫)를 말한다.

탱화의 국내 일인자가 세운 절이 전라북도에 있다 하여 찾아 나섰다. 물론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곳을 찾아가려면 전주에서 익산을 향하여 ‘백 리 벚꽃길’이라 불렸던 옛날 전군도로를 따라가는 것이 좋다. 중간쯤에서 방향을 바꾸어 일제 강점기 때에 농촌 속의 도시였던 부용역을 찾아간다.

 

이곳 부용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부용사가 있다.

전북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자리 잡은 부용사(芙蓉寺)는 절을 창건한 사람이 손수 불상을 만들고 단청을 칠하고 불화를 그렸으며 절 안은 물론이고 정원의 건물이나 조각품들 하나하나가 이 절을 창간한 스님이 손수 만든 것들이다. 그것도 어지간한 솜씨가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기능 보유자의 솜씨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 절이 바로 부용사이며 그 절을 세운 사람이 한국 불교 미술의 거두요 국내 최고의 단청 기능보유자 이며 주요 무형문화재 제48호인 김일섭 스님이다.

 

부용사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6년에 창건된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1961년 대웅전을 지으면서 칠성각과 산신각을 짓고 요사도 지어 절의 규모를 넓혔다. 절 안에는 중앙에 아미타불이 있고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배치하였다.

절의 뜰에는 칠층 석탑과 미륵불이 있고 사자 오층 석탑이 있다. 앞에는 하얗게 꽃을 피우는 백련지가 있다.

 

 

주지스님인 현산지관 스님은 천 선생이 찾아왔다고 별실로 안내한다. 이곳에서 연잎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지스님은 절을 창건한 김일섭 스님의 사위란다. 처음부터 불교에 귀의한 것이 아니고 사위가 되다 보니 장인인 김일섭 스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절을 관리하다 보니 불교와 탱화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이라 한다. 그는 장인어른의 존귀한 존재를 알리고 남겨진 작품을 잘 관리하며 장인어른이 남기신 불교미술의 흔적들을 찾아 보존하고자 한다.

금용(金容) 김일섭(金日燮) 스님은 한국 불교 미술사에 독보적인 존재였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불상을 만들고 탱화를 그렸으며 단청을 칠했다. 수많은 불교 관련 작품들을 곳곳에 남겼다.

 

현재 부용사에 남아 있는 기록 가운데 멀리 제주도 ‘관음사 후불도’를 그리기 위한 불화의 초본이 있다. 1940년 10월 17일에 일섭 스님이 제주도 관음사 성내 포교당에 봉안하기 위하여 그린 불화에 대한 초본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섭 스님의 자필 기록인 ‘연보(年譜)’에 이 불화를 그리기 위해 제주도에 들어온 시기와 작업 내용 및 함께 작업을 했던 화승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제주도에서는 스님의 작품인 ‘제주 관음사 후불도’가 문화적 가치와 예술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여 제주도 문화재로 등록하였다.

일섭 스님은 자기가 활동한 기록을 ‘연보(年譜)’에 기록하여 남겼다. 그 연보는 일섭 스님의 작품 활동을 포함한 일상의 활동 상황과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과의 교우, 불교에 대한 기록들이 있어 일섭 스님을 이해하고 그의 예술 세계와 종교관을 연구하는데 기반이 되는 소중한 자료다.

 

이 연보에 따르면 일섭 스님은 1938년부터 1950년까지는 전북의 부용사를 중심으로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에서 여러 불사를 맡아 작업을 하였으며 1950년대에는 대구 장수사에 거점을 두고 대구와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일대에서 불사작업을 하였다.

1950년 이후에는 거처를 어느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을 무대로 종횡무진 불사조처럼 활동을 했다.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고 자신의 솜씨를 아끼지 않고 봉사했다.

 

그는 불사를 맡아 작업할 때에 장소나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가 제작한 여러 불사 중에는 점집, 무당집, 수도원, 신상(神像) 등도 있다.

또한 재질도 석고와 시멘트와 같은 새로운 재료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는 결코 솜씨를 아끼지 않았으며 중생에 다가가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활용하였던 것 같다.

그는 우리나라의 불교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모은 귀인이었다.

 

그러나 부용사를 둘러보고 난 소감은 아쉬움이 크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이곳 부용사에 더 많이 남기고, 절의 규모도 더 크게 확장하여 본인의 명성에 걸맞은 전국적인 규모의 절로 만들어 놓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그가 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세상 욕심에 가득 찬 한 소인배의 바람일 뿐이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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