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속의 도시였던 부용역의 그때 그 시절

100년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풍요의 지역

작성일 : 2022-05-21 06:52 수정일 : 2022-05-23 09:04 작성자 : 이용만 기자

 

 

부용은 본래 백구면에 딸린 작은 마을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 철도가 놓이게 되고 기차역이 생기게 되었다. 부용역이 딸린 호남선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경인선이 개통된 1899년 이후 경부선, 경의선 다음으로 네 번째 놓인 철도다.

 

부용역은 1914년 호남선이 놓일 때부터 개설된 역으로 100년이 가꺼워 온다. 

익산역과 김제역 사이에 놓인 역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와룡역이 있다. 왜 이렇게 가까이에 역이 있는데 또 부용역을 만들었을까?

일본인들이 부용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해서였을까? 그들의 근성이나 야욕으로 봐서 그럴 리가 없다. 속셈이 뻔한 백구 벌판의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한 교통의 근거지로 삼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속셈으로 작은 마을이었던 부용에 기차역을 만들고 대형 도정공장을 만들었으며 금융조합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주재소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필요했다. 들판에서 벼를 실어오고 도정공장에서 정미를 해야 했으며 기차에 실어야 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가게가 생겼고 사람들을 관리할 주재소가 생기고 돈이 오고 가다 보니 은행도 필요하고 우체국도 필요했던 것이다. 차츰 여러 가지 가게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북적댔을 것이다. 부용은 일시에 농촌 속의 도시가 되었다. 면 소재지인 백구보다 더 큰 고을이 되었다. 시골 동네에 극장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이 백구면 월봉리다. 백구역이거나 월봉역이라 해야 맞다. 그런데 부용역이라 이름붙인 것은 일본인들이 살고 있던 마을이 부용리였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이들은 부용(芙蓉)이 연꽃을 의미하는 뜻이 있는바 인근에 부용사가 있어서 부용역이라 했다고 하나 부용사는 부용역보다 후에 생긴 절이다.

 

부용역은 현재는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다.

1914년 정식 부용역으로 개설했는데 1997년 승무원이 근무하는 간이역이 되었다가 2004년에는 승무원 없는 간이역이 되었으며 마침내 2008년부터는 기차가 쉬지 않고 통과하는 폐역이 되고 말았다.

현재 남아 있는 역사는 1958년에 고쳐 지은 역사다.

 

그러나 한때의 영화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은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부용역을 중심으로 많은 상점들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군산만 근대문화 유산지가 아니라 부용도 충분히 근대문화 유산지인 것이다.

기차역인 부용역사가 남아 있고 백구금융조합 건물이 국가등록문화재로써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1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백구금유조합은 일제가 백구 근처의 쌀을 수탈하는 일을 돕기 위하여 설립한 지방 금융기관으로 한때는 직원이 22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은행으로서의 보안을 위하여 창문에 철망까지 만들어져 있다. 1956년에는 농업은행으로 사용하였으며 이후에는 백구농협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건물의 구조는 일본식과 서양식 건축기법이 혼합된 형태다. 현관은 돌출된 T자형이며 내부에는 금고가 도난을 막기 위하여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다. 세로로 긴 창문에는 굵은 철사를 격자형으로 끼워 설치했다.

당시에 이 백구 금융조합은 인근의 백구면, 용지면, 공덕면을 관장하였다 한다.

 

지금 보아도 큰 규모인 오오쓰미 도정공장은 일본인 오오쓰미가 운영하던 정미소였다. 일제강점기 때에 벼를 도정하던 곳으로 백구금융조합 건물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이 도정공장은 규모가 큰 공장으로 이곳에서 밤낮으로 벼를 도정했다고 하며 백구뿐만 아니라 김제 일대의 많은 벼를 도정했다고 한다.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이 이끄는 곳으로 가보니 옛날의 영화를 엿볼 수 있는 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가게들이 즉 늘어서 있는데 '부용 이용원'을 비롯하여, 미용원, 양복점, 양장점, 식품가게, 당구장 등 많은 가게 이름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천 선생의 말에 의하면 당시에 이곳에는 막걸릿집은 물론이고 색시가 있는 고급 주점이 들어서서 부용이라는 기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고 한다. 그리고 면소재지에도 없었던 극장까지 있었다니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문을 닫고 쓸쓸하게 남아 있는 가게들이 있는 옛 거리에는 당시의 영화를 엿볼 수 있다.

 

부용역 부근은 비교적 당시의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는 곳인 만큼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근대문화유산 지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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