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그리운 임이 사는 고장 임실(任實)에서 냇물이 세 줄기 흐르고 뇌천, 후천, 유천의 내천(川) 자가 들어가는 마을이 세 개가 있는 삼계면(三溪面), 그중의 하나인 후천(後川)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봉현리가 나오고 조금 더 가다보면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어주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인 세심리(洗心里)에 이른다. 마을 뒤 콸콸 쏟아져 내리는 계곡 옆에 정자가 하나 서 있다.
광제정(光齊亭)
남원 양 씨의 매당(梅堂) 양돈(楊敦) 선생이 세우고 거주하던 정자다.
행정구역상 공식 명칭인 세심리를 '세심정이'라 부르는 것은 ‘광제정’을 흔히 ‘세심정’이라고도 부르는데서 유래한 것 같다.
처음 광제정이 세워졌던 후천리 오수천이 흐르는 곳의 마을을 '광제정이'라고 불렀던 것과 맥을 같이 하리라.
광제정은 처음부터 이곳에 세워졌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곳으로부터 1km 정도 떨어진 오수천이 흐르는 후천리 광제 마을에 세워졌다. 그것을 양돈 선생의 후손인 양정보가 고종 9년인 1871년에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
어쩌면 속세를 떠나 조용히 살고자 했던 매당 양돈 선생의 뜻이 이곳 세심리가 더 상통했는지 모르겠다.
양돈(楊敦) 선생은 호가 매당(梅堂) 또는 광제정(光齊亭)으로 세조 7년인 1461년에 태어나 1498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 진사가 되었다. 그러던 중 연산군 때에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무오사화는 김종직을 비롯한 사림파를 훈구파가 척결한 사건으로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구실삼아 40여 명의 선비들을 죽이거나 귀양보냈던 사건이다.
이상적인 왕도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일하던 사림파가 처형되고 김종직의 시체를 파내어 토막 내는 상황을 본 매당은 정치를 버리고 이곳 아산방(阿山坊) 봉현(蓬峴)에 은거하게 되었다. 아산방은 남원부의 48방 중 하나였던 삼계면의 남부지역을 말한다.
그러나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멀리까지 소문이 났고 중앙에서 남효온 등이 추천하여 수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고 광제정에 머물렀다.
1512년 70세로 사망하자 향민들이 그를 추모하여 아계사(阿溪詞)를 짓고 봄과 가을로 제사를 지내 주었다. 그러나 이 아계사는 대원군 때에 내린 사원 철폐령에 따라 함께 철폐되고 말았다.
이곳 광제정은 임실에서 출발하여 고고히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용요산 운수봉, 매봉, 노산, 깃대봉을 거쳐 자리 잡고 있는 감은산(해발 427m)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왼쪽으로는 호랑이가 버티고 있는 숙호(宿虎) 부락을 끼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복호암(伏虎巖)이 지키고 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광제정이 서 있는 세심천은 세심 휴양림을 거쳐 흐르는 맑은 물이다. 이곳을 거저 마음을 깨끗하게 씻는다는 세심(洗心)이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광제정은 정자로서는 흔하지 않게 단청이 그려져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인 정자인데 특이하게 정자 한 가운데 온돌방 형식의 환도실(環堵室)이 있다. 환도실은 사방에 마루를 놓고 그 중앙에 작은 방을 만들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든 방을 말한다.
정자 안쪽에는 양돈 선생이 직접 쓴 매당(梅堂) 이라는 현판이 결려 있다. 그리고 김인후의 시판도 걸려 있다.
같이 갔던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이 광제정 옆의 바위에 글이 새겨져 있다고 가르쳐주는데 초서로 휘갈겨 쓴 글이라 판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얼른 정자 입구에 서있는 남원양씨 한림공파 사업 기실비(南原梁氏翰林公波事業紀實碑)를 가리키면서 저기 사적비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고 둘러 부쳤다.
2000년 11월에 세운 그 비석에 새겨진 내용을 보면 남원양씨 한림공파 종회에서 1948년 광제정 단청 보수를 했고, 1986년 한림공 매당공 묘소 정비를 하였으며 1990년에는 광제정을 지방문화제 130호로 지정을 받아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보수를 하였고 1998년에 매당공 재실인 추선재(追善齋)를 중건하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일을 함에 있어서 성금을 낸 종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내용도 있다.
필자가 어려서 다녔던 학교가 광제정이 자리잡고 있는 세심리의 '세심초등학교'였고 내가 살던 마을이 매당 양돈 선생이 살던 '봉현리'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어려서부터 가끔씩 스쳐지나가던 광제정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지를 않았고 우리 동네에서 살았다는 양돈 선생님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던 무심한 나였음을 이제야 알겠다.
부끄러운 마음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세심정을 자주 들르고 양돈 선생님에 대해서도 공부를 더 해야겠다.
일단은 세심천에서 그동안 세파에 찌들어 얼룩진 마음부터 깨끗이 씻고 갈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