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주던 곳
정자 하나에 두 개의 현액이 걸려 있는 곳이 있다.
신포정(新浦亭)과 탁월정(濯月亭)
한 정자의 두 이름이다.
임실군 오수면 관월리 부락의 저라산 아래 오수천변 벼랑에 서 있는 신포정이 바로 그 정자다.
정자가 있는 마을이 관월(觀月)인데 이 마을은 지대가 높아 어느 곳에서나 동쪽에서 떠오르는 달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관월이라 했다 한다.
또한 이 마을에 있는 신포정(新浦亭) 역시 풍경이 뛰어나고 맑은 물이 발아래를 흘러가는 곳인데 밝고 깨끗한 달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탁월정(濯月亭)이라고도 한다.
이곳 정자는 오랫동안 신포정(新布亭)이라 불려 왔다. 그런데 신포정을 찾아간 사람들은 낯선 현액 앞에서 어리둥절한다.
정자에 걸려 있는 현액은 탁월정(濯月亭)이기 때문이다. 이때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잘못 찾아왔나 하고 돌아선다거나 이름이 바뀌었구나 하고 돌아서면 안 된다. 침착하게 정자를 한 바퀴 돌아보면 해결이 난다.
또 하나의 현액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신포정(新浦亭)이라는 현액이 버젓이 걸려 있다. 정자 하나에 두 개의 현액이 결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현액이 두 개가 걸리게 된 것은 무슨 연유에서였을까?
처음 정자를 세웠을 때에는 신포정(新布亭)이라 했다. 그러다가 현종 12년인 1846년에 오수 지역 친목회원들이 중건을 할 때에 탁월정(濯月亭)이라 이름을 바꾸어 현액을 걸었다. 이름이 바뀌자 혼란이 왔다. 전부터 신포정이라 불렀던 사람들은 계속 신포정이라 부르고 일부는 탁월정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 후 후손들이 다시 고쳐 신포정(新浦亭)이라 부르고 현액을 걸었다.
본래의 베 포(布) 자가 물가 포(浦)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현재 걸려 있는 현액은 신포정(新浦亭)이다.
벽송 한상길이 이곳에 와서 시를 읊을 때에는 탁월정으로 나오고 노석 한중석이 시를 읊을 때에는 신포정으로 나온다.
신포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팔작지붕을 갖춘 전형적인 정자의 모양이다. 다른 정자보다 단청이 화려하고 곱다. 정자의 안에는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그중 한 마리는 물고기를 물고 있다. 천정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네모 구조에 거북이도 있고 홍학, 백학 등이 모양이 조금씩 다르게 그려져 있다.
정면의 신포정(新浦亭)이라는 글씨는 조선 후기의 3대 명필이었던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고 또 다른 현액인 탁월정(濯月亭)은 조병학이 썼다고 한다.

특히 이삼만은 하루에 천 자씩을 매일 연습했으며 글자 한 자를 가르치는데 몇 달씩 걸렸다고 한다.
이삼만의 아버지가 뱀에 물려 죽었다 하여 이삼만은 뱀을 보면 죽였다. 그래서 뱀들이 이삼만을 무서워하였고 이삼만의 글씨가 뱀 모양이면 미리 겁을 내어 달아났다고 한다.
신포정은 오수 사람들 누구나 와서 쉬어가던 곳이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더위를 피하여 이곳에 와서 풍류를 즐겼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기를 업고 와서 놀기도 하고 책을 들고와 숙제를 하기도 했던 곳이다.
오수의 어느 여인은 부모님이 상급학교 진학을 시켜주지 않아 아쉬운 마음을 책을 가지고 이곳에 와서 읽으면서 풀었다고 한다.
지나가던 길손도 잠시 쉬어가기도 했던 신포정은 조금 위에 있는 해월암과 짝을 이루어 오수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주었던 멋과 풍류의 정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