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정리(鶴亭里) 석불과 성문사를 찾아오는 길은 특이하게 내가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을 부추겨 찾아왔다.
깊고 깊은 산골인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鶴亭里)는 글자 그대로 깊은 산골에 있는 정자 위를 학이 날아다니는 조용하고 고고한 곳이다. 삼계도 시내가 3개나 흐르는 산골인데 정자 위를 학이 날고 있는 학정리(鶴亭里)는 더 산골이며 거기에 성문안은 깊은 깨달음의 소리를 듣는 곳으로 산골 중의 산골이다.
이곳 학정리에는 남촌 부락과 사촌 부락, 그리고 성문안 부락이 있다. 초등학교가 있는 세심리까지는 십 리 길이요 면소재지까지는 이십 리 길이다.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던 우리 친구들은 새벽밥을 먹고 학교에 왔고 해가 넘어갈 무렵에야 집에 도착하였다.
운동회 연습하느라 해가 진 뒤에 보내주면 산 아래 동네인 송전 부락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부모들이 등불을 들고 마중을 오면 같이 산길을 넘어 가곤했다. 가을 일이 바빠 어른들이 미처 마중을 못 나오면 산 아래 동네 친구 집에서 자고 학교로 가곤했단다.
근처에 있는 학정 저수지는 필자가 어렸을 때에 어쩌다 한 번 와보면 저수지가 어찌나 크던지 끝이 가물가물했다. 농사철에 날이 가물어 저수지 물을 거의 다 빼면 고기들이 벌떡벌떡 뛰어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라 했다.
세심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여기 학정 저수지로 왔고 언젠가는 사람이 저수지에 빠져서 며칠이 되어도 나오지 않아 군산에서 잠수부가 와서 시신을 건진다는 소문이 나서 학교에서 전교생이 해녀를 구경하러 총출동을 하기도 했고 인근 사람들이 모여 저수지 주변이 사람으로 가득 차기도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날, 해녀는 물에 빠진 시체를 건져내지 못하고 허탕을 쳤다.
어쩌다 학교 선생님이 학정 저수지로 낚시질을 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학부모들이 밥을 해서 광주리에 이고 갖다 주기도 했다고 한다.
반상회가 한창일 때에 밤에 학정리에 오면 먼 길 왔다고 면서기와 선생님에게 달걀을 주기도 했다.
그 추억의 장소에 성문사가 있고 학정리 석불이 있다.
학정리 석불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성문사가 있는 곳에서 남서쪽으로 60미터쯤 떨어진 밭에 하반신이 절반쯤 땅에 묻힌 채 서 있었던 것을 성문사가 건립되면서 절 안으로 들여왔다. 학정리 석불은 2002년에 발굴을 하였는데 석불의 크기는 245cm, 너비는 98.8cm, 두께는 35.4cm이다.

학정리 석불은 다른 불상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
전체적인 몸매가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고 평면적이며 어깨는 좁은 편이고 겸손한 자세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한데 눈썹과 눈초리가 치켜 올라가 있고 인중이 또렷한 작은 입을 가지고 있으며 머리는 민머리다. 목은 짧은 편인데 두 줄 선으로 삼도(三道)를 선각하였다.
법의는 통견으로 옷의 주름이 선으로 조화되어 둔한 느낌을 준다.
목깃 아래에 왼쪽 겨드랑이에서 비스듬히 내려오는 옷자락을 내의 자락처럼 표현하였다.
양쪽 어깨에는 폭이 넓은 세 겹의 옷 주름이 겨드랑이 사이로 모였다가 없어진다. 수인은 분명하지 않아도 겨드랑이 사이로 모이는 양 어깨의 옷 주름이 대칭을 이루며 팔꿈치가 직각으로 굽혀 복부를 직선적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양 팔의 윤곽선에 비추어 양손을 소맷자락 속에 넣어 서로 맞잡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석불 앞에는 광배편(光背片)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거기에 의하면 석불과 대좌, 광배가 분리되자 광배를 잘라 경주 김 씨 묘역의 상석으로 만들기도 했던 것을 임실군에서 2006년에 남아 있는 광배를 참고하여 새로 만들어 세웠는데 여기 있는 것은 그 일부라는 것이다.
석불은 코가 떨어져 나간 상태다. 이에 대한 전설도 있다.
어느 날, 풀을 먹던 소가 갑자기 달아나는 것이었다. 소를 쫓아가던 농부가 돌멩이를 발견하고 소를 향하여 던졌는데 빗나가 석불의 코를 맞혀서 코가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 농부는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석불이 내린 벌이라 하여 석불을 두려워하며 존귀하게 여겼다 한다.

성문사(聲聞寺)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호국 사찰로 몽고군 공격을 두 번이나 받아 불에 타 소실되었다. 쉽게 생각하기는 성안의 동네여서 석문(石門) 안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고 부처님의 소리를 듣는다는 성문(聲聞) 안이다.
성문사 대웅보전 기둥에는 한글로 쓰여진 주련이 있어서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해놓았다. 거기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세간에 있는 것들을 모두 보았어도 부처님같이 존귀한 분이 없도다.”
성문사 주변의 민간인 묘와 동쪽의 경작지에서는 기와 조각과 옹기 조각들이 산재해 있어 어떤 문화재가 묻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사가 더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