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이석용과 28의사가 잠든 소충사(昭忠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았던 사람

작성일 : 2022-06-01 06:28 수정일 : 2022-06-01 10:34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임실에는 두 개의 호국 참배원이 있다.

하나는 국립 임실호국원이고 다른 하나는 소충사다. 국립 임실호국원은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애국 선영을 지역에 관계없이 안장하는 곳이고

소충사는 구한말 임실군 성수면 출신의 의병대장 정재(靜齋) 이석용(李錫庸) 의병장과 그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애국의병 28명의 혼을 달래주기 위한 사당 및 묘역이다.

. 소충사는 이석용 의병장 출생지인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 산 130-1번지 일원에 2만 평 부지로 조성된 애국 성지다.

 

소충사(昭忠祠)라는 현판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글씨이며 조의단과 28의사의 기념비문도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라고 한다.

 

정재(靜齋) 이석용(李錫庸) 의병장은 1878년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에서 출생하였다. 이석용 의병장은 1905년에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듬해인 1906년에 마국 공사에 서한을 보내 일본의 간계와 조선의 사정을 호소하였다.

그는 29세인 1906년에 성수상 상이암에서 의병 창의를 준비하고 다음 해 진안 마이산 용암 주필대에서 기삼연 등 호남의 유림들과 호남의병창의동맹단(湖南義兵倡義同盟團)을 조직하였다. 그 후 의병장 김동신 등과 합세하여 진안과 장수 등에서 전투를 벌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계속하여 의병활동을 하면서 12차례의 대소 전투를 벌여 일본인을 놀라게 하였다.

 

1911년 3월에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일본에 잠입하여 천왕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쳤다.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하려는 때에 밀고자가 생겨 1914년에 일경에 의해 체포되고 말았다.

그해 전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그해 4월 4일에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고 1995년에 현재의 소충사 묘역으로 안장되었다.

소충사에는 호남창의 동맹단비와 28의사비와 조이단비가 나란히 서있다. 그리고 의병에 가담했던 28명의 의사 이름도 새겨져 있다.

 

그가 대구 옥중에서 지은 시를 보면 그의 강한 신념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늘에는 항상 해와 달과 별빛이 비치지만

내 가슴속에는 일편단심 나라를 구하는 일뿐이다.

천추에 오직 내가 하여야 할 일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 바쳐 죽는 일이요

이것만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 일이다.”

 

누구는 목숨이 아까워 어떻게든지 살아보려고 이석용 의병장을 밀고하기도 하는데 그는 목숨 바쳐 죽는 일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이라 하였으니 나라에 대한 이만한 충성심도 없을 것이다.

 

봄이 물러가고 있는 5월 하순의 날씨는 덥다. 그 더위 속에서도 임실 지역의 문화유적지를 취재하도록 아침부터 서둘러 이곳으로 안내한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이라는 사람도 한결같이 지조가 굳은 사람이다.

 

이석용 의병장이 출생한 성수면 삼봉리를 찾아가는데도 좁은 논길을 비집고 가다가 하마터면 빠져나오지도 못할 뻔하기도 하였다.

 

 

의 출생지는 지극히 평범한 초가삼간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 살았던 우리 집 같은 초가삼간이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1903년까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그 후는 의병활동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난 것이다.

 

조용하고 아늑한 소충사 뜰에 서고 보니 성수의 조용한 시골에서 태어나 아무 걱정 없이 농사일에 종사했더라면 서른일곱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의 생애가 참으로 아깝고 애석하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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