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향교를 찾아가려면 순창군청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좋다.
순창읍을 동서로 관통하는 경천을 건너가는 길은 요즘 새로 놓은 멋진 다리들이 많지만 오래된 순창교를 건너가는 것도 향교를 찾아가는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순창교는 순창읍 교성리와 순화리를 잇는 다리다. 순창군에서는 새로 다리를 놓고 야간 조명 장치까지 하여 교화교라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볼품없고 좁은 옛날 다리인 순창교로 건너가는 맛도 고전적이다.
순창향교는 그야말로 순창지역의 인재를 길러내는 장소였다. 향교는 요즘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국립 교육기관이다. 서당이 초등교육을 맡았으며 향교가 중등교육을 맡았던 것이다. 대학교육은 성균관에서 맡았다.
순창향교는 지척에 조선시대 생원, 진사 등이 모여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양성하던 옥천 사마재(司馬齋)를 끼고 있다. ‘옥천(玉川)’은 오래 전 마한시대부터 불려온 순창의 본래의 이름이다. 순창에는 지금도 옥천이라는 이름이 많이 있다.
순창향교는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는 소중한 문화재다.
순창향교는 정확한 건립 날짜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되던 태조 원년에 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부와 군과 현에 향교를 건립하도록 한 것으로 미루어 그때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장소는 작천(鵲川) 부근에 설립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성종 때에 옥천동으로 이전하였고 명종 15년인 1560년에 중수를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현종 2년인 1661년에는 추산의 충신당(忠信堂)으로 이전하였고 숙종 20년에는 낙뢰로 교사가 파괴되기도 하였다. 다음 해인 1695년에 현재의 위치에 신축 기공을 하여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먼저 향교에 들어서는 문이 외삼문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명륜당이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이다. 이곳에서 수업이 이루어졌다. 담을 따라서 여러 개의 공적비들이 서 있다. 순창지역을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에 대한 공적비들이다.
마당 양쪽으로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이는 이곳 향교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의 기숙사다. 대성전을 들어서려면 문을 하나 거쳐야 하는데 그 문이 내삼문이다.
내삼문을 들어서야 비로소 대성전을 볼 수 있다.
대성전에는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라 일컫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 성인 5위인 공자를 중심으로 증자, 안자, 맹자, 자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중국 송나라 성현 2위인, 정호와 주희의 위패가 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학자 18현인 신라의 최치원, 설총, 고려시대의 정몽주와 안향이 있고 조선조의 정여창, 김굉필, 이언적, 조광조, 김인후, 공이황, 성혼, 공이이, 조헌, 김장생, 송시열, 김집, 박세채, 송준길 등의 25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향교에서는 봄과 가을에 이들에 대한 제사를 지내며 초하루와 보름날에 분향례를 한다.
현재 순창향교에서는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선비문화체험 사업을 하고 있다. 유아와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단체 관광객을 중심으로 전통 전래 놀이로 선비들의 여가놀이와 순창지역 유교문화 유적지, 순창 객사, 귀래정, 설 씨 부인 권선문, 신경준 선생 유적지, 삼인대, 낙덕정, 어은정 등의 지역문화 지역을 탐방할 수 있게 해준다.
또 하나 전통 혼인례를 주선한다. 희망자에 한하여 건전한 혼인관과 미풍양속인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전통 혼례식을 통하여 일생을 추억에 남기고 싶은 회혼례 등을 주선한다.
그리고 일요학교와 전통 예절 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유교 경전 강독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현대문명에 젖어 있는 자녀들에게 수천 년 우리 조상들의 지식과 지혜와 숨결이 녹아 있는 향교를 찾아서 고전 공부도 하고 옛 역사와 풍습을 익혀보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