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의 못자리를 만든 김제 금산의 수류 성당(水流 聖堂)

전동 성당과 역사를 함께하는 유서 깊은 성당

작성일 : 2022-06-07 06:28 수정일 : 2022-07-01 11:11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단비다. 가뭄이 계속되다가 내린 비라 반가운 비였다.

예로부터 칠 년 대한 가뭄 끝에 내린 비도 길을 가는 나그네에게는 반갑지 않은 비라 하였다. 그런데도 반가운 비라 생각하고 길을 나서자는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은 빗길에 좁디좁은 수류성당 길을 운전하다가 차까지 긁혔다.

그래도 꼭 가봐야 한다는 곳이 바로 수류 성당(水流 聖堂)이었다.

 

휴일인 토요일인데도 마침 사무실에 사람이 있어서 이 성당은 꼭 가봐야 하는 성당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 말했더니 의자를 가져다가 앉으라 하더니 강의가 시작되었다. 꼼짝없이 수강생이 되어 상당히 긴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수류 성당(水流 聖堂)은 전주의 전동 성당과 역사를 함께하는 유서 깊은 성당이다.

본 수류성당은 1889년 베르모렐(Vermorel. 1888~1919) 신부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설립한 ‘배재 성당’이 모태가 된다. 베르모렐 신부는 그해에 세례를 주고 수류 공소를 설립하였다.

공소란 신부님 없이 신도들만 있는 성당을 말한다. 몇 개의 공소를 묶어 신부님이 순회하며 미사를 드리는 곳이다. 1895년 5월에 공석인 배재 공소에 라크루(Lacrouts. 1895~1929) 신부가 부임하여 새로운 성당 자리를 물색하였는데 그곳이 지금의 수류 성당 자리라고 한다. 본래 이곳은 이영삼 진사의 재실 자리였다. 조상의 혼을 섬기던 자리에 하느님의 신전을 만든 것이다.

 

그 사이 1894년 갑오년에 일어난 동학농민 혁명으로 2대 주임 조조 신부가 살해되는 비극도 겪었다. 3대 라크루 주임 신부가 부임하면서 수류 본당으로 개명되기도 하였다.

 

처음 지어진 수류성당은 1900년에 부임한 피네(Peynet) 신부가 1906년에 착공하여 이듬해인 1907년 8월에 준공하였는데 48간의 목조건물이었다. 당시의 사진은 남아 있지 않은데 이 건물과 똑같은 성당이 익산의 나바위 성당의 건물이라 한다.

 

수류성당이 완성되자 그동안 제대로 미사에 참여하지 못했던 신도들이 사방에서 이사를 와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는데 이곳을 교우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 교육을 위하여 만든 학교가 지금의 화율초등학교라 한다.

 

한국전쟁의 포화는 이곳에도 미쳐와 빨치산들에 의해 48간의 목조건물 소중한 성당이 불타고 말았다. 1950년 9월 24일 주일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에 신도들이 모여 있었는데 빨치산들이 성당에 불을 질러 건물이 전소되고 말았다. 그리고 당시에 예배를 드리던 50여 명의 신도들은 빨치산에게 끌려가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생사를 알 수 없어 순교자로 인정받지도 못한다고 한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혹은 북으로 끌려가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생사마저 알 수가 없는 상태여서 순교자로 인정도 되지 않은 안타까운 상태라고 한다.

 

당시 수류성당에 피난해 있던 김현배 주교와 신부 8명과 수녀 14명이 체포되어 갖은 고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59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당시에 수류성당을 재건축하기 위해 신도들은 미국으로부터 지원된 구호물자를 아껴서 팔아 자금에 보태고 앞 냇가에서 모래와 자갈을 가져다가 직접 공사를 하였는데 한국전쟁 때 불탄 것을 교훈 삼아 목조로 짓지 않고 시멘트로 지은 것이라 한다.

 

 

현재 3개의 마을이 있는데 마을 주민 90% 정도가 천주교 신자여서 지금도 여전히 교우촌이라 부를만한 곳이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성당이 위치한 곳이 상당히 높은 곳이어서 길이 경사가 급한데  주일이면 이 비탈길을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힘들여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도 기어이 올라가는 이유를 이 길이 나의 마지막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길이 십자가의 길이요 신앙의 길이요 주님이 가신 길이라는 신념과 자부심으로 미사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수류성당이 처음 생겨서 각지에서 이사를 와 예배를 드렸던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마음이라 여겨져 숙연해진다

 

수류성당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영화 ‘보리울의 여름’을 이곳 수류성당에서 촬영을 한 후부터라고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성당 앞에 매달려 있는 종인데 대포 껍질이라 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 대포 껍질을 거꾸로 매달아 종으로 사용 한 곳이 몇 군데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곳 수류성당을 성소의 못자리라 부른다. 이 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 어느 나라보다 한 성당에서 많은 신부와 수녀를 배출했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곳에서 배출한 신부가 17명이고 수녀는 20명에 달한다고 한다.

 

모악산 줄기 안에 있는 한적한 산골에서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 길이 남을 초창기의 성당을 지어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교우촌을 만들고 신실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는 이곳이야 말로 하늘아래 가장 신성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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