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신평 가덕리 하가 구석기 유적지
원시시대 우리 조상들은 어떤 곳에서 살았을까?
유적지에 가보면 움집을 짓고 돌도끼를 든 원시인들의 모형을 볼 수 있다. 평소의 궁금증은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살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 고장 임실에서도 그들이 살았다는 것이었다. 그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며 지접 가보자는 것이다.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이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은 신평면 소재지인 원천리에서 다리를 건넌 가덕리 하가지역 섬진강 상류 강변이었다. 파란 곡식들이 자라고 있는 평범한 들판이다.
“여기는 우리 동네하고 똑같은 들판인데 여기가 거기라고?”
그가 말없이 한쪽을 가리킨다. 거기 안내판이 하나 서있다. 그냥 서 있는 자그마한 안내판인데 거기 어마어마한 내용이 쓰여 있다.
이곳에서 무려 2만 년 전의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16,000여 점이 출토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물이 구석기 시대에 원시인들이 사용하였던 유물이라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에 사용하던 기구는 주로 돌이다.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를 사용하다가 점차 돌을 깨어서 사용하였다. 이곳에서 나온 유물들은 돌을 깨어서 썼던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이라는 것이다. 후기 구석기 세대에 사람들이 살았으면 그 전인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 살아올 수도 있겠는데 그때의 유물은 찾지 못한 것으로 미루어 후기 구석기 시대에 어디에선가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던가 보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발굴이 진행되었는데 유적지가 최소 50,000제곱미터에 달할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콩이나 깨가 자라고 있는 저 밭의 땅속 어디엔가는 그때 그 사람들이 사용했던 유물들이 묻혀 있다는 것이다.

임실 신평 하가지역 구석기 유적지와 발굴 장면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슴베찌르개, 나뭇잎 모양 찌르개, 각추상석기인 모뿔석기, 나이프형 석기, 새기개, 밀개, 긁개, 홈 날, 톱니 날, 부리 날 석기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확돌 모양의 석기, 잘 갈린 자갈과 함께 불에 탄 돌들이 발견되어 불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돌과 나무와 짐승의 뿔과 뼈를 사용했으며 이들을 이용해 필요한 기구를 만들어 썼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돌날을 제작하여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돌날 제작에 관한 유물과 돌날을 이용하여 만든 유물들이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일본에서만 있다고 주장하는 유물들도 나와 한일 문화 교류와 양국의 문화 유적물을 규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라북도 임실군 신평은 예로부터 살기 좋은 지역이었다.
이곳은 제법 큰 냇물인 섬진강 상류인 오원천이 흘러 내려오면서 양쪽으로 들판을 이루어 물산이 풍부해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던 곳이다.
신평이라는 이름과 대리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농사를 지을 땅이 있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관촌에 있는 대리보나 형제보들도 이곳 신평 들판에 물을 대기 위한 보인 것을 생각하면 이곳이 예로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 농사를 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가덕리에는 하가의 구석기 유적지와 상가의 윷판 암각화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으로 예원예술대학교도 생겼을 것이다.
“내가 다시 대학을 다닐 수 있다면 역사학과나 지리학과를 다니겠네. 그래서 지나가면서 보이는 것들 중에는 소중한 유물들이 많은데 눈 뜨고 달달 봉사 같은 까막눈으로 사는 것을 면하고 싶네,”
“그러세요. 하지만 흘러가버린 세월을 어디에서 찾아올 것인가요?”
나에게서 흘러가버린 세월.
그 세월도 저 하가지역 구석기 시대의 유물처럼 땅 속에 묻힐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