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애가 단 한 번이듯이 단 한 번만 지나가는 시계판 위에 내 생애를 그려 넣으면 내 인생의 시계 바늘은 지금 몇 시쯤 와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남성은 81세 정도이고 여성은 85세라고 한다. 여성의 평균 수명을 종점으로 나이 시계를 만들어 보면 한 시간이 7년 정도 된다. 42세인 사람은 절반인 6시에 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몇 시에 와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인생의 시계 바늘이 10시를 넘어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도 채 안 된다. 마지막 한 시간은 힘이 없어 이렇다 할 활동도 못한 채 쉬면서 지내야 할 것 같으니 제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딱 1시간 정도다.
이제 한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남은 내 일생에 그동안 꼭 해보고 싶었는데 못해본 것을 해보기 위하여 먼저 버킷리스트를 만들어야겠다. 그것만은 꼭 하기로 한 것들을 살펴보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다.
사람은 일을 하고나서 후회하는 일보다 해보지 못해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 죽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껄’이란다.
“한 번 해보기라도 할 껄, 그때 이렇게 할 껄, 좀 더 잘 할 껄, …”
지금까지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돌아볼 수는 있어도 돌아갈 수는 없는 길이 인생의 길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 오던 길을 다시 걸어볼 수 없고 단 한 시간만이라도 되돌아 갈 수 없다.

내 인생의 시계가 10시를 넘어 11시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황금 같은 시간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말이구나. 이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일어서자. 그리고 무언가를 하자. 언제 어느 때 무슨 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에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내 어머니의 버킷리스트라는 것이 있다.
이제 암으로 얼마 못 살게 된 어머니를 위하여 자식들이 나서서 어머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드리는 일이다.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못한 어머니께 드레스를 입혀주는 일, 어머니가 좋아했던 가수 만나게 해주는 일, 가고 싶었던 곳 여행 가기, 고향 사람들 모아놓고 잘 차린 식사 대접하는 일….
“나 없는 내 인생”이라는 영화가 있다.
17살에 너바나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만난 남자와 첫사랑을 하고 첫 키스를 하고 첫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여자 이야기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 여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설거지를 하다가 쓰러졌는데 암 말기라 한다. 살아 있을 남은 기간은 딱 두 달.
이자벨 코아셋 감독이 스무 번이 넘는 오디션을 치르고도 여자 주인공을 정하지 못했는데 뉴욕에서 사라 폴리를 만나는 순간 필이 꽂혔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의 주인공 앤이 문을 열고 나에게 들어왔다.”
앤은 자기의 병을 숨기고 두 달 동안 할 일을 버킷리스트로 작성한다.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다.
아이들에게 사랑한다 말하기, 인조손톱 붙여보기, 생일에 들려줄 메시지 녹음하기, 아이 키워줄 새엄마 구하기, 술 담배 피워보기, 헤일 베이 해변에 피크닉 가기, 딴 남자와 사랑해 보기 등 지극히 평범한 일이다.
버킷리스트라고 해서 돈 많은 외국인이 했던 것처럼 오대양 육대주와 양 극점을 다 가보기 등의 거창한 것만이 버킷리스트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내 버킷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제 내 인생의 시계를 그려보고 소소한 것이라도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시행해 보자.
지금 내 인생의 시계를 그려보자.
내 인생의 시계 바늘은 어디쯤 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