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 읊는 운암초‧중학교 교정의 고인돌
돌이라 하면 일단은 단단하다는 의미가 앞선다.
수많은 인류의 유물들이 돌에 새겨서 보전을 해왔다. 만일 돌이 없었다면 소중한 인류 문화재가 태반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그 자리라는 팻말만 붙어 있을 곳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인간에 빗댄 돌은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것도 있지만 멍청하다는 의미가 이에 못지않다. 돌대가리는 최악의 비난 중의 하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운암초‧중학교 교정에 엎드려 있는 고인돌들은 멍청한 것 같지가 않다. 어딘가 모르게 좀 유식해 보이고 생김새도 점잖아 보인다.

운암초‧중학교 교정이라는 특수한 곳에 위치한 탓인가? 아니면 학생들이 글 읽는 소리를 오랫동안 들어온 탓일까?
아무리 무생물이라도 천 번, 만 번 귀에 박히도록 들으면 귀가 열리지 않을까? 그렇다면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저 고인돌은 삼 년이 아니고 삼천 년도 더 되었을 것이니 풍월 하나 못 읊을까?
저 고인돌이 얘기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지금부터 일만 년 전에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는데 다른 짐승들이 무서워서 동굴에서 숨어서 살았단다. 어느 날 족장의 아이가 죽고 말았구나. 너무도 예뻤던 아이인지라 땅에 묻으면 짐승들이 파헤칠까 봐 큰 돌로 눌러놓았단다.…”
저 고인돌만이 들려줄 수 있는 비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운암초‧중학교 학생들이여, 저 고인돌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가까이 가서 말을 걸어보라. 어쩌면 고인돌의 얘기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얘기를 들을 수 있는 학생은 내로라는 작가가 될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고인돌의 얘기를 엮어서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신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본래 고인돌이 있던 자리는 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동네 뒷산 중턱이었다. 사람들이 죽으면 시신을 묻으러 갔던 동네 뒷산이었다.
섬진강에 댐이 막아지고 마을들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에 물을 피하여 높은 곳으로 올라오다 보니 이곳으로 학교가 옮겨지게 되었고 학교 교정에 있는 고인돌을 그대로 보존하게 된 것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다른 실향민과 다른 애환이 하나 더 있다. 진안의 용담댐을 비롯한 다른 곳의 실향민들은 한 번 고향을 잃고 나서 다른 곳에 가서 정착을 하면 된다. 산 설고 낯 설은 곳이지만 그곳에 정 붙이고 살면 그런대로 살만하다.
그러나 이곳 운암댐 사람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바닷가 간척지인 계화도에 내동댕이쳐지고 농사를 지어도 허연 소금물에 벼가 다 죽게 된 땅으로 보내졌다. 몇 해를 참고 견디어 보아도 도저히 입에 풀칠을 할 수가 없게 된 섬진강 땜 실향민들은 불하받은 땅을 헐값에 팔고 다시 전에 살던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 나무 막대기로 집을 얽어 살기 시작한 것이다. 집 앞의 땅을 파고 일구어 농사를 지어도 가을 홍수가 나면 곡식들을 물속에 집어넣어야 했고 내 땅이 아니라 어디에 대고 호소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는 보트를 타고 다니며 물 위로 솟아 있는 키가 큰 수수이삭을 잘라오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도 저 고인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실향민과 같이 울었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고인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보라고 했으면 좋을 텐데 그 말을 전해줄 사람이 없어서 한이다.
“이것 보시오, 재야 인문 사학자님. 당신이 한 번 교장에게 말해서 학생들에게 고인돌 교육을 좀 시켜주면 어떻겠소?”
“무슨 말씀이다요. 이 학교에는 그것 말고도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만큼 무서운 이야기도 있는데요.”
으잉? 이건 또 무슨 얘기란 말인가? 공개하기 곤란하니 그냥 묻어두자.
오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운암초‧중학교 교정에 놓여 있는 고인돌들은 오늘도 멀고 먼 옛날이야기를 간직한 채 학생들의 글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