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철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역은 맨 처음 철도가 놓인 서울과 인천 사이의 역일 것이다. 그 후 경부선이 놓이고 호남선이 놓였으니까 전라선에 있는 역들은 가장 오래된 역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처음 지어진 목조 건물 그대로 남아 있는 역이 전라선에 있다. 그 역이 바로 전라북도 남원시 서도역(書道驛)이다.
대부분의 나무로 지은 건물들이 한국전쟁 때 불타서 그 후부터는 불타지 않은 벽돌로 지었다.
그런데 서도역은 나무로 지은 역이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찾아가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취재의 길라잡이를 자청한 사람은 임실치즈테마 파크에서 전통예절을 지도하고 있는 엄난희 선생님이다. 그는 임실을 사랑하고 임실에 살면서 임실에 대하여 많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서도역은 임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애착이 가는 곳이란다.
서도역은 전라선이 개통하던 1931년 10월 1일부터 기차역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남원과 오수 사이에 놓여 있는 역으로 주로 남원의 사매 사람들이 이용을 했으며 인근의 임실이나 순창 사람들도 산길을 걸어와서 서도역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역들이 한국전쟁 때 불타는 액운을 입었지만 서도역만은 화를 면해서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2002년 전라선이 고속철도화 되면서 신역으로 역사가 옮겨가고 구역은 철도역사 문화공간으로 남았다.
서도역으로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곳이 “구 서도역 영상 촬영장”이다. 서도역으로 기차를 타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점잖게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어르신이 보이고 아기를 둘러업고 나온 아낙네도 보인다. 엿판을 메고 기차를 타러 온 사람들에게 엿을 파는 아이의 모습과 서도역 광장을 어슬렁거리는 개와 닭도 있다.
이어서 서도역 건물이 보이는데 온통 나무로 지은 자그마한 건물이다. 나무로 만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승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나무 의자가 벽에 딱 붙어 있고 가운데도 몇 개 있다. ‘기차 시간표’라 적힌 작은 칠판이 걸려 있다. 한쪽에는 기차표 파는 창구가 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엄난희 선생이 소리를 높인다.
“임실 가는 표 석장 주세요.”
같이 따라온 지사 사람 이영희 언니는 기차표 달라는 말도 못하고 웃기만 하고 있다. 자녀들이 오면 이곳으로 데리고 와야겠다고 한다.
역사 안의 벽에는 파노라마 흐름으로 기차역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대합실 옆에 역장실이 있다. 역장이 썼던 모자와 두툼한 외투가 옛날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이곳 서도역은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데 “미스터 선샤인”과 “동주”의 촬영지라고 한다.
서도역은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중요한 문학적 공간이며 도입 부분이다.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 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며 강모가 전주로 학교 다닐 때에 이용하던 역이다.
철로가 지나가는 프래트 홈으로 나가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서도역 표지판이다. 다음 행선지를 경성과 여수라고 쓰여 있다. 어느 역이나 다음 역을 써놓지 종점을 행선지로 쓰지는 않는다. 본래에는 아마 남원과 오수라고 쓰여 있었을 것이다.
기차역임을 나타내는 철로가 길게 늘어 있고 선로의 방향을 바꾸는 시그널이 8개나 된다. 이곳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한쪽에는 서도역 역사박물관이 있고 서도역의 모습과 기차의 모형이 새겨져 있으며 소설 혼불에 나오는 장면들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들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징크 아트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선로를 따라 아름드리 벚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한때는 벚꽃을 무성하게 달고 서있었을 것인데 지금은 몸통만 굵어진 채 가지 끝은 낡아 마른 상태이고 몸통 부분에서만 푸른 잎이 무성하다.
그래,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이곳에 서 있었을 것이니 세월 앞에서 너라고 무슨 수로 버텨내겠느냐? 이제 네 인생의 석양을 향해 가는가 보다. 그동안 수없이 보아왔을 서도역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들려주고 가면 좋으련만 입을 궂게 다물고 말이 없구나.
잘 있거라. 나무야, 서도역아!
뜨거운 햇살 아래 한여름의 서도역은 옛이야기만 간직한 채 마냥 한산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