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인이 숨어든 상관 어두리 내아마을

풀뿌리로 연명하면서도 지켜온 믿음의 성지

작성일 : 2022-07-11 07:20 수정일 : 2022-07-11 08:29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취재를 하다 보면 한 번 갔던 곳을 다시 찾아가야 할 때가 있다.

천주교 초창기에 박해를 피해 고덕산 깊은 산골짜기로 숨어들어가 믿음의 집단촌을 이루며 살았던 완주군 상관면 어두리 내아 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한 달 전에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과 함께 찾아갔던 곳이다. 그때에는 이곳에 와서 마을 주변을 돌아보고 전에 몰래 숨어서 살던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 낡은 집 두어 채하고 유일하게 남은 예배 장소에 서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찾았으나 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던 주민을 만나지 못했다.

 

그 후, 임실에서 나서 임실에서 근무를 하면서 향토사학에 대한 관심이 많은 엄난희 선생님이 완주군 상관에 산다기에 고덕산 골짜기의 어두리 천주교인 이야기를 했더니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나섰다.

다시 어두리 마을을 돌아본 후, 상관 성당으로 찾아갔다. 어두리와 가장 가까운 성당이니 이곳에 가면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관 성당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전부터 근무하던 사람이 아니라 아는 바가 없다 하였다. 그러면서 전에 그곳에서 살았던 분의 자녀들이 신리에 살고 있으니 그곳을 찾아가 보라 알려주었다.

엄난희 선생님이 자주 다니는 가게여서 쉽게 찾아갔다. 그러나 선친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취재 못 하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이 분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다른 한 분을 소개하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전화를 통해 만나고자 하는 취지를 말씀드렸더니 지금 전주에 있으니 기다리면 달려오겠단다. 정말 성의가 좋으신 분이라는 생각에 성당 마당에서 기다렸다.

뜻밖에도 상관 천주교회 강덕용 사목회장님이셨다. 그리고 본인이 어두리에서 살았던 분이셨다.

찻집에 마주 앉아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한 시간은 나 자신이 조선 시대로 들어가 있는 듯했다. 이야기는 강덕용 사목회장님의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취재에 응해주신 강덕용 상관천주교회 사목회장님

 

어머니는 진안 마령에서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모두 천주교 신자인 믿음의 가족이었다. 그 윗대의 조상은 본래 완주군 이서의 초남이 성지에서 살다가 박해를 피해 진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진안 마령에서는 한들 성당을 중심으로 옹기를 구우면서 살았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더 이상 진안에서는 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완주군 상관면 골짜기에 숨어 살기 괜찮은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열세 살 때에 이곳 고덕산 산골짜기로 들어왔다.

이곳 상관에는 이곳뿐만 아니라 골짝 꼴짝 마다 천주교인들이 숨어 살던 곳이 몇 군데 더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비참했다.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세상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데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아야 했다. 낮에는 연기를 피울 수가 없었고 밤에는 불을 피울 수가 없었다.

큰 돌을 들어내면 움푹 파인 곳에다 풀잎을 깔고 잠을 자면서 지냈다. 물이 없어 200m 아래에까지 가서 물을 길어다 먹어야 했고 불을 피울 때는 작은 불을 여러 사람이 들러 앉아 불빛을 막으면서 피워야 했다.

봄, 여름, 가을은 산에 풀도 있고 나뭇잎도 있어서 그래도 나았지만 겨울에는 먹을 것이라고는 칡뿌리 밖에 없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발각되면 모두가 잡혀가는 형편이라 조심, 또 조심하며 살았다. 그래도 믿음만은 변치 않고 굳게 지켜왔다.

 

고덕산 정상에서 내려오다 보면 도독한 부분이 보이는데 그 아래에 굴을 파고 그곳에 모여 예배를 드렸단다. 그때에 27가구에  80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아주까리 기름에 심지를 만들어 불을 밝히고 예배를 드렸단다. 그 굴이 지금도 있다고 한다.    

지금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그곳은 정기적으로 신부님이 이 골짜기로 들어와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날에 숨어 있던 신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곳이며 그때에 고해성사도 이루어진 곳이라 한다. 

 

 

 전에 천주교인들이 살았던 어두리의 낡은 집

 

아버지가 이곳으로 오게 된 사연은 가족들이 익산 창인동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아버지가 천주교에 입교를 하게 되어 형이 야단을 치는 바람에 맨손으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한다. 그래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한다.

 

지금 신앙생활하기가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그때의 어두리 사람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앙의 길은 십자가의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천주교를 박해하던 조선시대가 끝나자 그래도 성당에 나와 예배를 드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상처는 이곳에도 몰아쳤다. 상관 성당에서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 중 9명이 인민군에게 끌려가 순교를 했다.

강덕용 사목회장 어머니는 한국전쟁 때에 인민군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도록 상관면 치안대장이 보호를 했는데 그 사람은 여순사건과 관련된 사람으로 아버지와 함께 이 골짜기로 숨어들어왔을 때에 어머니가 먹을 것을 갖다 주면서 정성껏 돌보아 주었던 사람이라 한다. 그 후 그는 한국전쟁 때 상관면 치안대장을 했는데 이분은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니 누구도 건드리지 말라 하였다 한다. 어머니의 선행으로 가족들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두리는 그야말로 믿음의 성지라 한다. 믿음의 집단촌이었는데 최근에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 새로 전원주택을 짓고 별장처럼 지내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단다.

 

상관농협 이사님도 겸하고 있는 상관천주교회 강덕용 사목회장님은 처참했던 어두리 은둔 생활을 회상하며 그동안 흔들림 없이 믿음을 굳게 지켜온 은혜로 본인도 건강한 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녀들이 잘 되어 자동차도 사주고 용돈도 충분히 주어 여생을 편히 잘 살고 있다고 하신다.

여든을 넘긴지가 오래되었는데도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전주 남문 성당에 자주 나가 사목회장들끼리 나들이를 갈 때는 자동차로 실어 나르는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믿음의 뿌리 위에 어두리의 힘든 신앙생활을 기반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산 증인이 되신 강덕용 사목회장님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천주교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믿음의 산줄기를 보는 듯했다.

 

궁금했던 상관 어두리의 천주교인 집단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강덕용 사목회장님께 감사하는 인사로 오늘의 취재를 마무리했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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