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은 김제 못지않게 넓은 들판이 있는 지역이다. 김제보다 장점인 것은 산도 많고 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들도 많다.
부자라면 흔히 경주의 최부자 이야기가 나오고 낮은 굴뚝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한 사람들이 끼니 끓일 것이 없어 불도 못 지피는데 부잣집에서 밥하느라 피운 연기가 마을에서 보이지 않도록 굴뚝을 낮게 만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 하여 높이 사는 것이다.
그런 굴뚝은 여기저기에 있다.
정읍의 김명관 고택에도 어김없이 낮은 굴뚝들이 있다.
부잣집의 전형적인 고택인 김명관 고택은 김명관이 조선시대 정조 8년인 1784년에 지은 집이다. 집이 완성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도 한다.
국가 민속 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주택은 조선 중기의 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김명관 주택은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위치하며 뒤로는 지네를 닮아 지네산이라고도 부르는 해발 150미터의 청하산을 등지고 있고 앞으로는 동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건을 갖춘 집이다.
이 집은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어 국가 민속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 집의 특징은 기둥의 배열이나 처마의 흐름이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주변의 풍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부잣집답게 넓은 대지 위에 건물들이 많다.
바깥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인다.
사랑채는 주로 남자 주인이 기거하면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바깥사랑채에는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문간방, 마구간, 곳간, 부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문간방은 청지기에 달린 하인이 거처하고 문간 사랑방은 행랑아범이라 부르는 청지기가 기거한 방이다.
안쪽 행랑채의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보인다.
대청을 중심으로 집의 구조가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안채에는 좌우 전면의 돌출된 부분이 있어 ㄷ자 형태를 이룬 특이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기거하는 곳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양측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좌우에는 큰방과 작은방이 있으며 양쪽에 부엌을 배치하였다. 큰방은 시어머니가 기거하고 작은 방은 며느리가 기거하였다.

이 집에는 바깥 사랑채와 안 사랑채가 두 동씩 있다. 안주인에 대한 배려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 사랑채는 안주인을 찾아온 손님들이 머무르던 곳이다. 부녀자들은 평소에는 출입이 잦지 않다가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에 찾아오면 이곳에서 유숙했으며 출가한 딸이 해산을 위해 돌아올 경우 이곳에서 몸을 풀기도 했다.
안 행랑채가 있는데 이곳에는 주로 살림을 돕는 여종들이 기거하던 방과 어린아이들이 공부하던 책방, 곳간과 안변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이곳은 안채와 바깥사랑채를 구분 짓는 역할도 하였다.
사당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이곳 사당은 맞배지붕의 홑처마로 되어 있고 유일하게 두리기둥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밖에 외양간도 있고 측간도 있고 우물이나 장독대도 있다. 후문에 해당하는 협문도 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이 낮게 만들어진 굴뚝들이다. 부잣집이니까 굴뚝도 높이 세울 만한데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낮게 만든 것이다. 먹을 양식이 없어 불을 땔 수 없는 사람들에게 밥 지을 때 나는 연기를 감추려고 낮게 만든 것이다. 부자들이라고 다 제 욕심만 챙기고 거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담 밖에는 외거 노비들이 기거했던 호지집들이 있다. 현재는 앞쪽과 뒤쪽의 두 채가 남아 있는데 여러 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님, 이쪽으로 와 보시오.”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이 나를 부를 때에는 무언가가 있다. 좁은 길 건너에도 집들이 여러 채 있다. 그런데 안내판이 하나도 서 있지 않다. 이유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니 이곳은 둘째 아들 집이란다. 집의 형태나 구조가 부모의 집과 같기 때문에 설명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이곳은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녹두꽃은 ‘사람, 하늘이 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휴먼드라마다.
2019년 4월 26일부터 7월 13일까지 방송되었던 것으로 조정석, 윤시윤, 한메리, 최무성이 출연하였던 드라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민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싸워야 했던 이복형제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김명관 고택 앞으로 넓게 들판이 펼쳐져 있다. 이 논들이 거의 김명관 것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면서 정읍의 넓은 벌판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