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에 전해오는 왕의 무덤인 검은 돌무덤

가야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릉

작성일 : 2022-07-19 00:43 수정일 : 2022-07-19 09:31 작성자 : 이용만 기자

 

 

깜장 돌멩이 하늘 솟아 흐른다

 

이 강산

강정 들판 돌무덤을 돌아가는 강물 길

실뿌리로 솟아 흐른다

 

깜장 돌무덤이

필봉산 풀꽃 수레에 실려

지리산 공비로 안개 너머 가신 최 씨 할머니

우주로 돌아간 것을 경호강은 알까?

보라, 동이의 하늘 구형왕의 돌무덤

가야 백성 울음이 계곡을 돌아 흐른다

 

깜장 돌멩이 빛으로 날아

가야의 한 마음이

경호강 물결로 이어 흐른다.

 

 

경상남도 산청 출신의 이명혜 시인의 시 「경호강」이다.

 

경호강은 경남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에서 진주의 진양호까지의 80리 물길을 말하며 진주에 이르러 남강으로 불리어 흐르다가 낙동강에 합류하는 강이다.

경호강이 중요한 것은 이 강 줄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돌로 만들어진 왕릉이 있다. 그것도 검은 돌로 만들어진 무덤이다.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이 전부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귀한 자료를 보내면서 특별히 산청의 구형왕 돌무덤을 강조하였다. 무언가 취재거리가 되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전에 시낭송 반을 지도할 때 산청 출신 시인 이명혜의 경호강을 학습하면서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어 더욱 반가웠다.

 

산청 전 구형왕릉(山淸 傳 仇衡王陵)은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삼국 시대의 가야 유적이다. 대한민국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야는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알에서 태어난 6가야로 이루어진 나라로 그 중 키가 9척이요 기골이 장대했던 수로왕이 대표적인 가야의 시조로 불린다. 

구형왕이 다스리던 가야는 금관가야다. 가야는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서기 42년부터 532년까지 49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존속했던 나라로써 신라에 망하기 전의 이름은 가락국이라 했다.

가야는 신라를 자주 공격하여 위협적인 존재였다. 더욱이나 왜국과 합세하여 신라를 공격하여 나라의 존폐가 위태로워진 신라가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해 광개토대왕이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도우러 오기도 했다.

당시의 정세는 신라와 가야가 자주 전쟁을 벌였던 혼란의 시기였다. 여기에 왜국이 가세를 했는데 이것은 일본이 가야가 자기들의 속국이었다고 억지를 부리는 빌미가 되기도 하였다.

 

 

 

구형왕릉은 가락국의 10대 왕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검은 돌로 만들어져 있다. 구형왕은 521년부터 11년간 가야를 다스렸으나 신라의 거센 세력 앞에 백성들의 희생이 너무 클 것을 염려하여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주면서 왕으로서 할 일을 못했으니 왕릉이 아닌 일반인들의 무덤을 만들되 일반인보다도 못한 돌로 쌓은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을 유언하여 돌로 만들었다 한다. 그것도 평지에 피라미드처럼 거창하게 만든 것이 아니고 산비탈에 주위의 돌을 주워다 덮는 정도의 허술한 무덤으로 만든 것이다.

신라는 가야의 왕족들을 극진히 대우했고 신라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유신 장군은 구형왕의 증손자다.

 

이 구형왕릉은 왕릉으로 보기에는 너무 허술하여 일종의 탑으로 보는 이도 있다. 이것은 안동과 의성에 이와 비슷한 돌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돌무더기는 왕릉이라는 기록들이 여러 곳에 있다. 동국여지승람, 산음현 산천조에 ‘현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능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 왕릉이라 전한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문인 홍의영의 ‘왕산심릉기’에 왕릉이라 기록되어 있고 무덤의 서쪽에 ‘왕산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 전해오는 ‘왕산사기’에 구형왕릉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일반 무덤과는 다르게 만들어져 있다. 일반 무덤은 평지에 만드는데 구형왕릉은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앞면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게 하고 뒤로 갈수록 낮아져서 뒷면은 비탈진 경사와 맞닿아 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돌무덤 앞 중앙에 ‘가락국양왕릉’이라는 비석이 있고 상석과 장명등, 좌우에 문인석과 무인석, 석수가 짝을 이루어 서 있는데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후에 만들어 세운 것이다.

양왕은 구형왕의 다른 이름을 일컫는 말이다.

다른 자료인 “산청현유지”에는 이 무덤이 처음 발견된 것은 정조 22년인 1798년이라 한다.

또 하나 전해 내려오는 설에 의하면 약 200년 전에 어떤 사람이 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오다가 비를 피하여 왕산사에 들렸다가 왕산사 법당 들보 위에서 목궤를 발견했는데 거기에서 구형왕의 유품들이 나와서 이를 토대로 왕릉을 찾았다 한다.

조선시대 정조 17년인 1793년에 왕산사에 전해 내려오던 나무상자에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와 옷, 활 등이 발견되어 이를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오늘도 경호강은 대전에서 출발하여 진주를 향하여 달리는 대진고속도로를 따라 그 옛날 가야의 하늘을 보며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다. 

 

작은 나라에 태어나 왕으로 살기는 했지만 끝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넘겨주어야 했던 설움을 안고 돌무더기 속에 갇혀 있어야 했던 구형왕은 가야 백성들의 한을 안고 흐르는 통한의 저 경호강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기나 한 것일까?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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