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운암 3대 운동 기념비

나라 사랑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똑같다

작성일 : 2022-07-21 08:00 수정일 : 2022-07-21 09:05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임실군 운암면 운암초‧중학교 교문 앞 작은 공터에는 특이한 시설물이 하나 있다.

이름 하여 ‘운암 3대 운동 기념비’다.

 

“그냥 지나가기에는 소중한 유적이 하나 있습니다.”

운암초‧중학교 안에 있는 고인돌을 향해 묻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도 아쉬운 발길을 돌려 자동차를 타려는 나의 옷소매를 끌어당긴 사람은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

운암 3대 운동 기념비를 보고 가야 한단다. 운암초‧중학교 교문 바로 앞에 있다.

 

운암 3대 운동이란 나라의 주권과 독립을 위해 임실군에서는 처음으로 운암에서 벌였던 세 가지 운동을 말하는데 기미 3‧1 만세 운동, 갑오 동학 혁명, 무인 멸해 운동(戊寅滅倭運動)을 말한다.

거기에는 기미 3‧1 운동 기념비, 갑오 동학혁명 기념비, 무인 멸왜 운동 기념비가 서 있고 특별히 옆에 열사 혁암(革菴) 한영태(韓泳泰) 묘비가 서 있어 4개의 기념비가 서 있다.

 

특별히 한영태의 기념비를 추가한 이유는 임실군 천도교 교구장이었던 한영태(1878-1919)는 임실지역 3‧1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3‧1 운동이 시작되던 1919년 3월 1일의 다음 날인 3월 2일에 전주교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천도교 교인들에게 독립선언서를 각 면에 배포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준비를 거쳐 1919년 3월 12일 임실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임실 지역 곳곳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게 하였다.

한영태는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는 도중 모진 고문에도 일체를 발설하지 않았으며 3월 7일, 밤중에 옷을 찢어 새끼를 꼬아 목에 걸고 혀를 깨문 뒤 새끼 끈의 끝을 발로 잡아 다녀 자결을 하였다.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김영원과 최봉상은 옥중 순국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옥살이를 하였다.

 

운암은 임실 동학의 발상지로써 최찬국, 최승우, 김영원, 김학원, 한영배, 송광호, 이용수, 이종필, 신학래, 최봉상 등 많은 동학의 지도자들을 배출한 곳이다.

 

 

 

동학혁명이나 3‧1 운동은 잘 알지만  멸해 운동(滅倭運動)은 생소하다.

멸왜 운동이란 일본이 망하기를 기원하는 모임에서 벌였던 운동이다. 박영창, 최종기, 김한경, 정상열, 박성언 등이 일본이 망하기를 기원하는 105일 특별기도회를 운암에서 시작하였는데 전국으로 퍼져 그 후 5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이 1938년 무인년에 해주에서 발각되어 기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황해도 경찰국에 검거되었으며 임실에서는 최종기, 김한경, 박성언 등이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던 운동을 말한다.

 

운암 3대 운동 기념비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로 천도교 후손들의 대표인 최동안, 김정갑 선생의 주도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983년 6월 17일에 후손들의 부담과 각계의 후원에 힘입어 총공사비 1,170만 원으로 3대 운동 기념비를 건립하여 이곳에 세우게 된 것이다.

 

여기에 쓰여 있는 이름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이름이며 나라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린 사람들인가. 결코 가볍게 읽어 내려가는 이름들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시설이 운암초‧중학교 앞에 세워진 것은 이 고장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와 장차 이 나라의 초석이 될 학생들에게 살아 있는 애국 애족의 교육의 현장으로써 가치가 크다 할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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